바쁜 일상 잠시 내려놓고… 걸으며 묵상하기

바쁜 일상 잠시 내려놓고… 걸으며 묵상하기

[ 문화 ] 본지 기자 제주 올레(15코스) 19km 완주기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0년 01월 13일(수) 14:23

   
▲ 제주 올레 15코스는 한림항을 출발해 고내포구에 도착하는 길로 19km에 이른다.
거릿길(큰길)에서 대문앞까지 이르는 좁은 길을 아시나요? 대로변에 촘촘히 들어선 도시의 주택들과는 다르게 제주도에는 거릿길에서 대문까지 이르는 좁은 길이 있다. 양 옆으로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담이 있는 골목이다. 도시의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선 대문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 길을 '올레'라 부른다. 거릿길에서 대문까지 즉 집안으로 통하는 좁은 길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본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올레'를 찾았다. 지난해 부터 국내에서 '걷는 여행'이라는 붐을 일으킨 시발점으로 지난 12월 26일 개장한 15코스(19㎞)이다. 


 
# 올레에 가기까지

【제주】 취재차 수차례에 걸쳐서 제주를 방문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가보기도 어려운 그 길을 비행기 타고 셀 수 없이 오갔다면 부러워 할 일이다. 그러나 아침에 혹은 출근했다가 갑자기 출장 명령을 받고 공항에서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해서 취재를 마무리하고 그날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대부분이었다는 내막을 알게되면 결코 부러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레 기획'은 기획단계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관련 홈페이지를 찾아 보고, 전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올레와 같은 길들도 인터넷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준비했다. 그리고 제주사랑선교회 회장 박재홍목사(납읍교회)에게 도움도 구했다. 박 목사는 지난해 4월부터 한 달이 넘게 순례의길 산티에고를 걸으면서 올레길이 기독교인들의 묵상하는 길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 올레에 '첫발'을

   
▲ 다양한 올레의 모습.
제주를 찾은 것은 지난 12월 29일. 전국에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쳤기에 단단히 복장을 갖추고 제주행 첫 비행기로 공항에 도착했다. 한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가 거의 없다는 제주의 날씨는 역시나 한겨울의 추위를 다 보내고 봄을 눈 앞에 둔 날씨와 같았다. 항상 푸르름을 간직한 들판에는 각종 채소가 수확의 때를 기다린다.

납읍교회(박재홍목사 시무)에서 만난 박 목사ㆍ이영례씨 부부와 김민목사(협재교회)ㆍ박은회씨 부부, 그리고 김용일목사(예안교회)ㆍ조미란씨 부부가 초행인 기자와 올레꾼이 됐다. 이번에 개장한 15코스 올레는 한림항을 출발해서 평수포구, 성로동농산물집하장, 선운정사, 혜림교회, 금산공원입구, 납읍교회(납읍리사무소), 과오름입구, 고내봉정상, 고내교차로 등을 거쳐 고내포구에 도착하는 19㎞이다.

입항한 어선을 둘러싸고 갓 잡아온 신선한 생선을 거래하는 한림항을 뒤로하고, 갈매기들의 환송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우선 출발선에서 눈에 들어 온 것은 파랑색과 노란색 리본. 제주의 바다와 귤을 상징하는 두 색깔이다. 그리고 지나는 길마다 파랑색 페인트로 사람인(人)자로 표시된 화살표가 있다. 이 두 표식만 따라 가면 올레 끝에 다다를 수 있다.

한림항에서 혜린교회까지 7, 8㎞까지는 포장된 길과 농로 등으로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혜린교회를 지나 금산공원에 이르는 구간은 오솔길이다. 지금까지 걸었던 평탄한 길이 그리워 질 정도로 숨이 차오른다.

   
▲ 다양한 올레의 모습.
박 목사가 입을 열었다. "산티에고를 걸으면서 정말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걸으면서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는 그는 "올레가 이런 길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소망했다. 그래서 올레가 개발된 것에 대해 박 목사는 감사하다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길을 걸으며 기도하기를 희망했다. 제주사랑선교회 회원들이 올레를 함께 걷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교회에서는 올레를 연 서명숙씨(제주올레 이사장)를 초청해서 토론회도 가졌다.

특히 박 목사는 이번 15코스가 납읍교회를 지나게 된 것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교회 입구에 환영 현수막을 걸고 교회를 개방했다. 올레꾼들에게 기꺼이 교회 화장실을 개방하고, 음료와 사탕 등을 제공하며 잠쉬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쉼터를 제공했다. 동행한 협재교회 김민목사도 올레꾼들을 위해 교회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납읍교회는 15코스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기자와 함께 한 올레꾼들이 10시 30분에 한림항을 출발한 후 2시간이 넘어서야 납읍교회에 도착해 마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납읍교회는 입구에서부터 교회 현관에 이르는 길이 올레의 모양을 갖추고 있어 찾는 이들에게 쉼터로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선물한다.

납읍교회에 들어서기 5백m전에는 특별한 올레가 있다. 지역에 맑은 공기를 제공하고 있는 허파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금산공원이다. 내부를 둘러 볼 수 있는 올레가 조성되어 있지만 겉에서 보기에도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울창함을 자랑한다. 제주 사람들을 이러한 곳을 '곶자왈'이라고 한다. 곶자왈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니 마음이 무거워짐을 감출 수 없다.

# 묵상하며 걷는 올레

납읍교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는 어렵지 않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왔으나 지금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안내 올레꾼 박 목사의 설명에 긴장감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동행한 올레꾼들 조차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왜 걸어야 하는 가"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채웠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기자는 '걷는 것이 좋다'는 막연한 생각에 퇴근 후에 강변을 걷곤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저 한, 두 시간 걷는 것으로 건강해 지기를 기대해 왔다.

그러나 올레를 걸으면서 4, 5㎞, 좀더 힘을 내서 생각하면 납읍교회로부터 시작되는 10㎞에 접어들면서 이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마음 속으로는 기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지만 올레는 '느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바쁜 생활을 잠시 탈출한 '여유'이다. 한림항에서 출발한 15코스의 종착점인 고내포구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 5분이면 도착한다. 그 거리를 산넘고 물건너, 올레를 따라 5, 6시간 동안 걷는 것이다.

   
▲ 좌로부터 납읍교회 박재홍목사와 부인 이영례씨, 박은회씨(김민목사 부인), 예안교회 김용일목사와 부인 조미란씨, 협재교회 김민목사.
동행한 올레꾼 김용일목사는 목회에서 소진된 영성을 걸으면서 회복한다고 말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기도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동행하는 올레꾼들과 대화를 나누며 목회에 새힘, 영적인 회복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19㎞를 완주하는 끝길, 밭에서 저녁거리로 무 하나를 뽑아 나오는 할머니를 만났다. 4ㆍ3사태 등 각종 사건을 경험했던 제주 노인들은 외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 조차 두려워 한다. 그러나 올레가 개발 되면서 노인들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날 만난 할머니도 우리 올레꾼들을 보내며 "어떵 경 먼길을 걸엉와수꽈? 커피라도 호끔 행 갑서게…."라며,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오전 10시 30분에 한림항을 출발, 고내포구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0분. 점심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5시간을 꼬박 걸었다. 그러나 피곤함 보다는 복잡한 일상을 탈출해 모처럼 가졌던 여유, 그리고 걸으면서 가졌던 묵상과 기도가 머리를 맑게 한다.
  글ㆍ사진 박만서부국장 대우  mspark@pckworld.com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