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땅끝, 우크라이나 고려인 마을

또 다른 땅끝, 우크라이나 고려인 마을

[ 땅끝편지 ] 말라위 강지헌 선교사<2>

강지헌 선교사
2023년 11월 15일(수) 08:24
우크라이나에서의 고려인 교회에 대해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가 살던 테르노필시에서 100Km쯤 서쪽으로 L'viv(예전에는 '르비브'라고 발음했는데 요즘에는 '리비우'라 발음하는 것 같다)라는 서부 우크라이나의 중심 도시가 있다.

중세의 건축물들이 하나도 파괴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 도시에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목사 선교사가 고려인 교회를 시작했기에 자주 갔었다. 고려인 교회는 고려인협회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는데 그 고려인협회를 만든 사람이 지난 글에 언급한 소련군 대령 출신이다. 그는 제대 후 리비우로 와서 고려식당을 열고 고려인들을 찾기 위해 그 도시의 전화번호부를 다 뒤져 고려인들을 찾아 내었고 약 50명 정도로 구성된 협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의 고려식당을 예배장소로 제공을 했고 우리는 예배 후 함께 국수를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난생 처음 보는 고려인들, 그들의 가족들이었지만, 고난을 당한 그들에 대한 같은 민족으로서의 긍휼의 감정 같은 것이 느껴져 특별히 애틋한 마음을 처음부터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다른 도시에 있다 보니 자주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틈 나는데로 종종 예배에 참석하며 그들과 교제를 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한글 교육을 했는데 공부 중 나오는 '한복'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한복'을 입어보고 싶어해 후원교회에 부탁해서 한복을 받은 적이 있다. 받은 한복들을 보내만 드리고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한복을 입은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남녀 구분이 없거나 저고리만 입었거나 한 모습이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입어 보기는 커녕 본적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고려 것 또는 뿌리에 대한 무형의 그리움을 유형화해서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던 그 알 수 없는 향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짠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다. 그렇게 즐거이, 또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며 성경구절도 열심히 외우던 고려인 교회 설립자께서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하셨다고 목사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성경도 암송해 가며 열심히 읽고 기도도 했지만 내가 평생을 믿고 따라왔던 유물론과 무신론을 포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마음으로 더 이상 교회에 나오는 것은 위선적인 것 같다. 미안하다. 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식당에서 교회 예배는 계속 드려도 좋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따로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설득도 해 보고 기도도 했지만 이미 정해진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가 60년 이상을 거의 신앙처럼 지켜왔던 사고 체계를 전환하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를 위해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믿는 것은 그를 위해 일을 시작하신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직접 일을 하시어 그가 다시 하나님 나라의 좋은 구성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고 또한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비슷한 일이 몽골에서도 있었다. 주로 치과대학생, 치과의사들, 의과대학생들, 의사들과 그들의 친지들이 주축이 된 교회를 미국 선교사와 함께 시작하게 됐다. 이동진료봉사를 항상 함께 다니며, 열심히 성경 공부에도 참여하며, 교회에서 찬양팀으로 봉사도 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며 결국 가족들 모두를 교회로 인도한 여학생이 있었다. 물론 나중에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열심으로 신앙 생활하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 출석을 안 하길래 물었더니 오빠가 그녀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하며 못 나가게 한다고 한다. 그 오빠도 성실히 교회 출석하고 신학교를 가겠다고까지 한 청년이었는데, 그가 무당이 된 것이고 그 이후 모든 식구들이 교회로의 발길을 끊은 것이다.

한 때 몽골의 무당들이 하늘 문이 열렸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 당시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긴 했다. 교회 잘 나오던 사람이 안 나와 알아보면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고는 했다. 아마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이제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새싹 같은 믿음이 채 영글기도 전에 그들 자신의 문화나 성장 배경, 주변의 압력 같은 것이 크게 작용을 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지금 일하고 있는 말라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성장 배경이나 민족 정체성, 문화 등에 따라 새로운 종교에 대한 수용성이 영향을 받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잘 알리는 것이 우리 선교사의 사명이며, 그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할 도리일 것이다.



강지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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