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에서 세례로

보드게임에서 세례로

[ 미션이상무!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3년 11월 01일(수) 09:45
박주현 목사의 군종 사역의 주안점인 '군종병'들과 함께한 토요일 활동 모습.
군선교에 가장 필수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이 있다면 '군종병'이다. 목사 혼자 다 할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군종병들을 얼마나 단단한 공동체로 만들어 내느냐가 장병 선교에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말이 공동체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군생활을 하는 용사들을 공동체로 묶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짜는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시간과 물질, 헌신이 없는 곳에 '열매'는 맺힐 수 없다. 그래서 나의 모든 사역지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는 군종병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을 오롯이 함께 보내는 일이다.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와 양육도 하고 같이 밥도 해 먹으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간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배움과 양육을 통해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 믿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일이 쉽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초임의 열심히 최선의 양육을 준비해 갔지만, 나의 기대와 그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동떨어져 있었다. 신앙적 도전은 현실과 달리 꽤 사치스러웠고, 깊은 대화를 하기엔 애매모호한 애착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군대 안에서 '주말은 핸드폰이다.'라는 명제를 깨뜨릴 수 있을 만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보드게임이다. 너무 거룩하지 않아 보이는가? 군 선교 현장은 날 것의 현장이다. 의미와 재미라는 지점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으면 반응은 어떤 곳보다도 냉정하다. 성경공부로 꽤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낸 후 점심을 같이 먹고, 슬슬 지루해질 법할 때, 구입해놓은 보드게임판을 펼쳐놓는다. 최대한 많은 인원이 개인 실력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함께 많은 시간을 몰입하다 보면, 생각보다 부쩍 가까워진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교회에 머무르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서로의 매력들을 마주하며 마음을 열고 대화의 물꼬가 트기 시작한다.전략적 성공이다. '보드게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계를 얻고,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민도, 아픔도, 그렇게 삶을 나누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의 방향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DNA를 나타내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가랑비에 옷이 젖기 시작한다.

조금씩 성장하는 군종병들을 통해 부대 안의 용사들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똑같이 힘든 군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 다른 그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한 번은 부대 안에 좋은 본이 되는 군종병에게 호감(?)을 느낀 한 용사가 '보드게임'에도 관심이 있어서 토요모임이 찾아온 적이 있다. 본인은 '보드게임'이 흥미로워서 온 것이고 찐 불교신자이니까 따로 기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OK! 성경공부 모임 후 점심 먹을 때부터 합류했던 인원은 불과 몇 주 뒤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생각을 넘어, 2달에 걸쳐 이 모임에 꾸준히 오고 있었다.

게임으로 시작했으나, 흔히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과 대화, 삶을 함께 들어가며, 어느 날 나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목사님 혹시 저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보드게임만 주구장창 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감사한 요청이었다. 흔쾌히 그 청을 받아, 3주간 새신자 양육을 한 뒤 세례를 희망하는 이에게 3주간의 세례교육을 더하여 역사적인 세례식을 하는 날을 맞게 됐다.

150명의 구성원들이 한 영혼을 위한 세례식을 준비했다. 세례간증문을 들으며, 전혀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간증문이었지만 진실했고,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고백앞에 세례를 주는 나도, 그 시간을 함께 준비했던 성도들과 군종병들도 함께 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이후 더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보드게임에서 세례로 이어진 한 영혼의 구원의 시작은 군종병들을 세워가는 시간에서 시작되었음을, 이 외에도 이들을 통한 많은 신앙의 간증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 한 영혼을 위한 관심과 사랑,헌신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가져온다.

박주현 목사 / 5기갑여단·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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