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되기: 소통과 설득의 시작

친구되기: 소통과 설득의 시작

[ 주간논단 ]

정성은 교수
2020년 04월 15일(수) 10:00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 15:15후)

선거철이 되면 다양한 설득 문구들이 거리에 넘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타인이 믿게 하려는 설득은 정치현장뿐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교회 등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하지만 쉽고 당연한 주장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상대방이 다른 믿음을 가진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런 경우 남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상대의 기존 생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뉴콤과 페스팅거 등 심리학 학자들은 인지 일관성의 원리로 이를 설명한다.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믿음은 논리적으로 서로 맞물려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면, 기존의 평형이 깨지게 된다. 평형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련 믿음을 수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불편하고 때로 고통스럽기에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주장을 거부한다. 처음 보는 외국 음식을 꺼리듯, 우리는 잘못된 지식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낯선 주장이나 반대주장을 경계한다. 새로운 주장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지식의 수용을 방해하고 사람들 간에 소통을 힘들게 한다. 그렇기에 소통과 설득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이 쌓아놓은 방어벽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소통을 가로막는 방어벽은 낯선 관계뿐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어벽을 찾기 힘든 관계도 있는데 친구 사이가 그렇다. 학교 주변을 지나치다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 소통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된다. 그들의 수다는 막힘이 없다. 온갖 정보 그리고 여러 감정이 쉴 새 없이 교환되고 공유된다. 그들은 대개 일정 기간 이상 놀이와 같은 즐거운 행위를 함께 하다 자연스럽게 서로 좋아하게 된 사이이다. 특별한 조건 없이 서로 좋아하면서 같은 편으로 생각하게 되고 상대방의 호의를 믿게 된다. 그런 믿음 덕분에 방어벽이 낮아져 속마음도 털어놓는 깊은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 아이들은 또한 서열을 짓지 않는다. 서열은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약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벽을 쌓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자로부터 통제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는 서열 없이 지극히 평등하기에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진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심리적 방어벽을 낮춰야 한다. 방어벽을 낮추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바른 길은 '친구 되기'다. 대학에서 설득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광고가 있다. 과일음료 광고인데 처음부터 거의 끝날 때까지 열 살 남짓한 두 친구가 평범하게 함께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으로 간 그들은 음료(광고상품)를 마시고, 그중 한 친구가 지쳐 소파에서 잠이 들고, 그를 본 친구는 잠든 친구를 안고 침실로 가 눕힌다. 방을 나서려 할 때, 침대에 누운 친구가 말한다, "아빠, 잘 자." 그 새 방을 나서는 친구는 아빠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밤인사를 하는 아들의 표정과 인사를 받은 아빠의 표정은 깊은 소통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통은 아빠가 낮아져 아이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몇 번을 봐도 코끝이 찡해오는 이 광고는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도 잘 묘사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 우위에 서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낮게 보지도 않는 것.

광고 속의 아빠처럼, 누군가 훨씬 훌륭한 사람이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친구가 되어줄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를 사랑하며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그러했다. 예수님은 영적 지도자이면서도 제자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허용하셨고 (요 15:14), 친히 그들의 친구가 되셨다 (요 15:15). 그리고 숨김없이 아시는 모든 것을 나누셨다 (요 15:15). 이렇게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신 말씀을 삶으로 사셨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 15:13)는 것을 가르치시고, 그 밤길로 기드온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내가 그 사람이다"(요 18:6) 말하고 자신의 목숨을 제자와 죄인인 친구들을 위해 내놓으셨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사랑이었다.



정성은 교수/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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