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 착용 후 주보 나누는 장군이 됐다

정복 착용 후 주보 나누는 장군이 됐다

[ 라떼는말이야! ]

서정열 장로
2024년 03월 27일(수) 08:55
육군 장군 진급 후 군인교회에서 정복을 입고 주보를 나누며 용사들을 경례와 포옹으로 맞이한 서정열 장로.
예전에 한 장군이 예배가 시작하기 전 정복을 입고 주보를 직접 주며 일일이 안내를 하였다. 장군은 묵묵히 주보를 돌리면서 계급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두에게 경례와 포옹을 하며 악수를 해주었다. 이후 교회는 장군에게 경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몰려든 장병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되었다. 군인교회에서는 장병이 장군에게 경례하는 것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장군이 장병들에게 경례를 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닐 뿐더러 그 행동이 이렇게 교회에 많은 장병들이 모이게 했으니 말이다.

1996년 필자도 장병들을 장군의 간증을 수첩에 적고 소원하며 기도했다. '내가 장군이 되면 꼭 이렇게 하겠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셨다. 1996년 필자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소령이 되면 누구나 장군이 되기를 꿈꾸지만 , 실제로 장군이 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2001년 7월 18일 14시 16분에 '계급을 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서원하였고, 이 서원대로 하나님은 나를 이끌어 가셨다.

장군 진급에 해당하던 2011년, 원래는 연말이나 연초에 전문 분야인 화력 관련 직책에 발령받아야 했는데 그해 6월 대구에 있는 2작전 사령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장군으로 진급하는 꿈이 무산되는 것 같아 낙심했지만 그해 11월, 필자는 장군으로 진급했다. 1983년에 임관한 필자는 처음으로 보병 장교가 아닌 포병 장교로 장군이 되었고, 동기생 중 가장 먼저 장군 반열에 올랐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특히 2작전 사령부 화력지원과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과장이 장군으로 진급했기에 화력지원과에서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당시 한 명의 부하는 "'자신도 이런 진급을 하고 싶다'며 자신이 진급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감격스럽다"면서 진심으로 축하를 전해 주었다. 당시 필자의 일기장에는 '이 일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라는 글이 적혀 있다.

필자는 2011년 11월 장군으로 진급한 후 교육을 받기 위해 주일 아침 일찍 사무실을 정리했다. 그리고 교회 신우회 부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박카스 10박스를 구입하여 근무지원단 등 용사들이 있는 곳의 당직 근무자들을 위문하고 예배에 참석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교육 기간에 장군 보직이 결정되었는데 예상했던 전방의 포병여단장이 아닌 이상한(?) 보직명령을 받았다. 바로 해군으로 가라는 것이다. 육군이 해군에 발령이 나는 것은 그 당시 상식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되지않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보직은 해군작전사령부가 있는 부산으로 파견 명령이 난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해인 2011년 그 작전 평가 후 합동성 강화와 타군을 이해하도록 육군에서 3명의 장군을 선발해서 해군 공군 해병대로 한 명씩 보낸 것이었다. 해군과 공군은 한 명씩 1, 3군에 파견을 보냈는데 군 창설 후 최초로 합동작전을 위한 합동작전 조정관이라는 보직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또 갖게 되었다. 동기생 중에 최초로 장군이 되었고 최초로 합동작전 조정관이라는 직책을 갖게 된 것이다.

해군으로 가서 근무할 때 주변에서 육군 장군이 왜 해군에 와 있을까?,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늘 새벽을 깨어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고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많았다

근무를 할 때도 많은 간부들이 '왜 해군에 근무하십니까?' '어떻게 술을 먹지 않고 근무를 할 수 있었가' 그 비법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필자는 그때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6개월을 해작사에서 근무했고 해군 간부들 중에서 회식하면 술을 먹지 않는 육군 장군이 있다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오르내렸고 작전사령관도 어떻게 술도 먹지 않는 사람이 장군으로 진급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필자는 수많은 회식자리에서 칠성사이다(칠성소주)와 백포도주(물)로 회식에 참석했고, 사령관을 모시면서 무난히 잘 지낼 수 있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때문에 부담도 있었지만 나는 마음이 홀가분했고 해군에 근무하던 많은 크리스찬들이 필자의 모습을 닮으려고 했다.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었고 그곳에 있으면서 인방사 백령도 연평도에서부터 각 함대사 제방사 등 구석구석 해군 부대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최선을 다해 사령관님을 모시고 있다가 2012년 5월 7일 일부로 3포병 여단장으로 보직되어 취임하였다. 포병여단장으로 보직되기전 5월 2일에 동기 한 명을 만났는데 내게 너무 교회에 미쳐 있는 것 같으니 앞으로 적당히(?) 균형있게 하라는 따뜻한 권면을 받고 왔다. 그때 내가 정말 하나님께 미친 중환자로 기관에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동기생 중에서 가장 먼저 장군으로 진급시켜주셨으니 이해가 안되는 은혜로 나는 3포병여단장으로 취임했다. 정말 하나님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나의 삶을 주관하고 계셨다.

3포병 여단장으로 5월 7일 오후 4에 취임하고 첫 주일 인 5월 13일 필자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정복을 입고 보혜사 교회에서 안내를 하면서 주보를 나누어주고 용사들을 안아주며 악수를 하고 맞이했다. "주여 드디어 장군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해주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속으로 감사를 되뇌이며 약속을 지키고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 후 하나님은 2014년 10월 16일 육군소장으로 진급하게 하셨고, 7사단장으로 칠성교회를 섬기게 하셨다. 필자는 그곳 군인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주보를 나눠주면서 군종 목사님을 보좌하며 장로로서 섬겼다. 하나님은 소초교회를 포함하여 23개의 건축을 헌당하게 하셨다.

사단장을 마치고 육군3사관학교장으로 가서도 이 약속을 계속 지켜나갔다. 지금 필자는 군문을 떠났지만 내 뒤를 이어 국가를 수호하는 많은 후배 장병들도 내가 서원했던 것처럼 꿈을 가지고 이루는 또 다른 더 멋진 '따라쟁이'가 나오길 기도하고 응원한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절절포'

서정열 장로 / 육군 장군(소장)·현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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