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엷어지는 '꼬레아노'의 정체성

점점 엷어지는 '꼬레아노'의 정체성

[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8)

최남영 선교사
2024년 03월 19일(화) 00:59
현지인개척교회 방문 전도축제에서 말씀을 전하는 최남영 선교사.
멕시코 최남단 유카탄 반도는 사시사철 무더운 날씨다. 척박한 환경, 가혹한 노동, 전혀 다른 생활 양식 등 힘든 악조건을 견디며, 농장 노동계약 4년이 끝났다.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4년 세월은 금방 지났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모아진 돈은 없었고, 고국에 돌아갈 길도 가로 막혔다. 그 사이 일본은 대한제국 이름과 외교권을 빼앗았고, 더 이상 돌아갈 조국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억만리 유카탄에서 땅을 치며 통탄해 했고, 이후 제2의 디아스포라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멕시코시티로 떠나고, 몬떼레이로 올라갔다. 가장 멀리 티후아나 국경까지 흩어졌다. 물론 유카탄에 남은 자들도 다수였다. 그렇게 100년 세월이 지났고, 정말 오랜만에 100주년 행사에서 자손들이 서로 만나 부둥켜 안았다. 긴 세월 속에 한국말은 잊었고, 감정도 멕시코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부모, 조부모들이 눈물로 불렀던 아리랑을 기억하고, 애국 찬미가를 떠듬거리며 따라한다. 다 잊고 살았던 부모님의 조국 대한민국이 100주년 행사로 되살아났고, 내 뿌리가 '꼬레아노'였음을 늦게나마 알게 한 중요한 계기였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언젠가 멕시코에서 대한민국과 축구 경기가 열렸다.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한인 후예 자손들을 모아 태극기를 나눠주고, 대한민국 응원팀을 만들었다. 경기장의 축구 열기가 더해가고 서로 공방전이 오가는 데, 어느 순간 멕시코 선수가 찬 공이 한국 골대를 뒤 흔들었다. 골의 함성이 터져 나오자 갑자기 한인 후예들도 벌떡 일어나 함께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더라는 대사관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무늬만 한국인일 뿐, 이미 뼛 속까지 달라진 멕시코 한인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그게 우리네 사람살이다.

제2의 디아스포라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북쪽 국경의 티후아나였다. 당시 그 먼 거리 국경도시에 무슨 돈벌이 정보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김씨 가족들 상당수가 옮겨왔다. 그후 국경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재력가들 몇몇이 구입한 티후아나 한인회관은 지금까지도 한인후예 자손 모임 구심체가 되고 있다. 이들은 매년 3.1절과 광복절마다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고, 모일 때는 각자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나누곤 했다. 김치와 부침개(지지미)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네 번째 티후아나100주년 행사도 이 건물에서 진행했고, 그 역사적인 자리에 우리 티후아나 한인교회가 진짜 한국음식을 준비하여 적극 협력했음은 물론이다.

100주년 행사를 마치면서 몇가지 교훈이 떠오른다. 멕시코 이민 한인 자손들은 어떻게 한 세기 100년만에 완벽히 현지화가 되었는가? 1세대, 2세대까지는 혈통 보존이 가능했지만 3세대 혹은 4세대는 불가능했다. 우리가 만난 후손들 얼굴은 분명 한국인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대부분 한국말 소통은 불가능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어떨까? 앞에서 언급한데로 이들이 무늬만 한국인이었던 것처럼 사고 방식도 완벽한 멕시코 현지인이다. 언어(말)와 문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말해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선교 현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선교사 고민도 여기에 있다. 장성한 자녀의 배우자 선택을 부모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30년 선교로 헌신한 선배선교사 중에 멕시코인 며느리를 맞이했다. 1세대 선교사의 약점인 현지 언어가 부족한 그분은 늘 불만이 많다. 사돈네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하다. 혈통보존 욕구가 유독 심한 한국인들의 문제인가? 지구촌 다문화시대를 맞이하며 유지하느냐, 포용하느냐 이것이 선교사만의 고민일까?

정말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 K 문화가 전세계로 확산 중에 있고, 멕시코 젊은이들의 열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교회가 진행하는 토요 한글학교는 동포자녀 뿐 아니라 멕시코 젊은 청년들이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티후아나 한인 후손 자녀들이 한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더욱 반갑다. 특별히 더 관심을 갖고 가족 사항을 확인해서 선배선교사에게 배운 대로 족보 가계도를 만들어주면 너무 신기해 한다. 100동안 잃어버린 조국(할아버지 나라)은 말을 배움으로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정체성의 회복이 아니겠는가?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 세계로 흩어지는 선교사, 한국 이민자들에게도 한국어 사랑 동기부여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100주년 행사의 두번째 교훈은 정말 견디기 힘든 조건과 노동 중에도 조국 광복의 꿈을 불태웠던 애국심이다. 그들은 대한인 국민회라는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숭무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과 군사훈련을 했으며, 푼푼이 모은 돈을 독립 자금으로 내놓았다. 당시 도산 안창호선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코 유카탄까지 내려가 한인 순방길에 나섰다. 노동자들의 농장 일터에 머물렀고, 그들과 직접 에네켄을 자르며 함께 했다. 동포애 실천이 한인 사회의 조국애와 사기를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멕시코 혁명으로 인해 한인 구심체도 함께 무너져 안타깝긴 했다. 그러나, 제2의 도시로 흩어지는 곳 마다 3.1절과 광복절은 정기적 만남의 날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 한인교회가 기념식 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이어간다.



최남영 선교사

총회 파송 멕시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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