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고군분투했던 고려인 거주지역 진료

매년 여름 고군분투했던 고려인 거주지역 진료

[ 땅끝편지 ] 말리위 강지헌 선교사<1>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3년 11월 06일(월) 06:02
우크라이나에서 고려인에게 치과 진료를 하고 있는 강지헌 선교사.
새로운 21세기가 시작하기 직전, 1990년대말, 5년간 살았던 나의 첫 선교지 우크라이나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지금 전쟁 중에 있으니 더욱 생각이 난다.

나는 서부 우크라이나의 작은 지방 도시인 테르노필이라는 곳에서 치과사역을 했는데 교도소, 집시촌 이동 진료 사역을 하며, 주로 도립병원에서 현지 우크라이나인들 진료를 했다. 그러던 중에 그 작은 지방 도시인 테르노필까지 농산물을 팔러 오는 고려인들을 만나게 됐고, 또 고려인 마을에서 사역을 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고려인 마을 이동진료를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수박, 양파, 마늘 등 야채 농사를 하며 여름이 되면 수확물을 대형 트럭에 싣고 전국을 다니며 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인들만 있는 테르노필의 시장에서 서로를 보고 반가와 하며 또 놀라기도 하며,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반가움에 수박 같은 것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그 고려인들 대부분은 내가 사는 곳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겨울에 그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는 것은 어려웠고, 낮 시간이 긴 여름에만 이동진료가 가능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몇 가지가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하나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하여 중앙아시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우리 고려인들의 이주 역사에 대한 것인데, 그때 그 기차 안에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주는 고려인 어르신의 증언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나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옆에서 굶어서 또는 얼어 죽는 사람들을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무력함 또는 당혹함, 그 비극은 우리가 간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임을 공감할 수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또 하나는 언어에 관한 것이다. 내가 살았던 서부 우크라이나 지방은 동부 우크라이나에 비해 훨씬 더 민족적 자존감이 높은 곳이다. 그곳은 러시아 말보다는 우크라이나 말을 주로 사용하는 곳이어서 나는 우크라이나 말을 배웠고 당연히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했는데 고려인들은 우크라이나 말을 하는 나를 보고는 매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우크라이나를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려인들에게 고향은 극동 러시아 연해주 지방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런 연유 아닐까라고 한참이 지나 이해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고려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졌던 일이다. 고려인 마을로 진료를 가게 되면 고려인들 뿐 아니라 같은 지역의 현지 우크라이나인들도 '한국 황금 손'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다. 그 때가 되면 그동안 현지인들에게 눌려 지내던 고려인들이 완장을 차게 된다. 진료를 받으러 오는 현지인들 줄을 세우고, 교통정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잠깐이나마 같은 민족이라 생각되는, 같은 얼굴 색을 가진 사람이 와서 백인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니 그것이 아마도 자랑거리였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눌린 마음에 위로를 드리고 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그 상황에서 가질 수 있었던 큰 기쁨이었다.

그 당시 고려인들 다수는 기독교에 대한 무관심과 어쩔 수 없이 평생을 배워 온 공산주의 무신론에서 아직 벗어 나지 못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언젠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실제로 어떤 소련군 고위장교 출신 고려인은 부단히도 노력을 했지만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말과 함께 교회를 떠나는 일도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한편 이해가 되는 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매년 여름이면 그렇게 먼 길을 달려 갔었나 보다.

그 당시 내게는 그 고려인들이 '땅끝'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땅끝의 고려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국인 선교사님들이 떠 오른다. 많은 연세에도 열악한 시골에 사시면서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같던 선교사님들이 궁금하다. 모두 건강하시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고려인 마을에서 먹던 뜨거운 '지름 국수(기름 국수, 잔치 국수)', '지름밥(볶음밥)'이, 그리고 그 고려인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강지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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