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사는 사람] 구덕교회 김임권 장로

[복음으로 사는 사람] 구덕교회 김임권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4년 10월 13일(월) 10:13

* 7전 8기 '오뚝이' 인생 김임권 장로

   
▲ 구더교회 김임권 장로.

【부산=신동하 차장】바다와 살아온 66년. 김임권 장로(구덕교회)의 지나온 인생은 바다와 닮았다.

잔잔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거친 풍랑을 만나 힘겹게 헤쳐나가기도 했다. 고난에 맞닥뜨리면 성경구절을 곱씹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 4:40)"

예수님이 제자들과 바다를 건널 때 큰 광풍이 일어나며 배에 물이 가득찼다.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고 "돌보아 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잔잔케 하셨다. 인생이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와 같지만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 하나만으로 김임권 장로는 자유함을 얻었다.

대형선망업계에서 톱 클래스에 속하는 (주)혜승수산의 대표이사 김임권 장로를 지난 25일 오후 부산 자택에서 만났다. 김 장로는 7전8기 '오뚝이'의 인생을 살아왔다.

김 장로는 194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어업에 종사하던 부모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돈 걱정없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산 수산대를 나와 국민은행에 입사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집안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부모님이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바다가 그냥 싫었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수산대를 들어가는 했지만 졸업 후에 은행에 취직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며 29살에 아버지 사업을 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다가 싫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다만큼은 자신있었다. 대학 1학년 때 63톤 배를 자가조선 할 정도로 배와 관련해서는 박사나 다름없었다.

경남 남해에서 배 2척으로 아버지 사업을 이어갔지만 오일쇼크가 그의 발목을 잡아 결국 실패의 아픔을 겪었다. 선산까지 다 팔고 손에 쥔 것 없이 고향을 떠나 부산 달동네로 쫓기듯 떠나왔다.

김 장로는 "교만이었다. 너무나 자신있어 사업을 우습게봤다"며 "사실상 가장이었는데 집안을 풍비박산냈다. 동생들이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백수생활이 시작됐다. 무일푼에 의욕도 없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던 중 이웃에 살던 구덕교회의 조병숙 권사를 만나며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았다. 조병숙 권사는 김 장로를 끊임없이 전도했다.

당시 김 장로는 무신론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갔었다. 김 장로는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노력과 의지에 달렸지, 신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벽마다 방문을 두드리며 새벽기도회를 가자는 조병숙 권사의 노력에 체면치레로 교회를 나가게 됐다. 그 사이 부인 이명숙 권사는 이미 복음에 붙잡힌 사람이 됐다.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김 장로는 백수생활에 남는게 시간이라고, 성경을 하루에 10시간 가량 정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이 귀하게 여기던 세상적 가치들이 산산조각 나고 깨지는 경험을 했다.

"조병숙 권사님이 성경 10독하고 인생이 변하지 않으면 본인이 책임지겠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의 단어들이 눈속에 화살같이 박히더군요. 자존심이 강해 눈물 한번 흘릴적 없는데, 성경을 보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겁니다."

믿음생활이 깊어지고 부흥회와 기도원을 다니면서 신비한 영적체험도 경험했다. 김 장로는 "내가 하나님을 모를 때도 하나님은 벌써 나를 부르고 사랑하셨구나라는 확신이 들면서부터는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며 "감히 표현하자면 은혜가 내 삶을 지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김임권 장로와 부인 이명숙 권사는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다.

그후 충무에서 매립업에 종사하다 돈을 빌려 1989년 '바다 사나이'답게 원양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3년 뒤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 장로는 "역시 교만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실패한 사업을 돌이켜보니 '돈을 벌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단순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는 오만한 생각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롭고 위대하신 분인데 한낱 피조물이 주체가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졌습니다. 인생에 있어 기회가 오면 그저 하나님께만 감사하자는 생각을 품는 계기가 됐습니다."

심기일전 해 1994년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동생이 가게를 팔아 마련해준 돈으로 부도를 맞은 한 사업가의 채무를 떠안으며 3000톤 운반선을 넘겨받아 명태를 실어나르는 일을 했다. 명태 수확량이 급증하며 승승장구했고, IMF 때 달러환율이 오르자 오히려 순이익이 증가해 운반선을 4척 더 늘리는 등 재정의 축복을 안았다.

그러면서 (주)혜승수산을 설립해 직접 멸치와 고등어를 잡는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주)혜승수산의 이름에는 '은혜로 승리하자'는 각오가 담겨있다.

(주)혜승수산에서 잡는 고등어는 국내 생산량의 10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2011년도에 한달 동안 137억 가량의 고등어를 잡는 등 선망업계에서 어획고로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간증이 있다. "수산업계에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전체 1등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누구에게 지는 성격이 아니라, 1등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사업가 장로님의 간증집을 읽었는데, '무엇을 하든 주께 하라'는 원칙으로 살아가니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직후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직원들을 더욱 존중하고 따뜻하게 품어주었습니다. 내가 직원들을 먹여살리는게 아니라, 그들 덕분에 내가 먹고 산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 직원들이 똘똘뭉쳐 자연스럽게 1등을 하게 됐습니다."

김임권 장로는 남모르게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활동을 벌여오기도 했다. 그는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정신으로 교회 개척과 후원을 비롯해 세계선교에 관심을 가지며 최근에는 미얀마에 복음방송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부흥회를 다녀오다 길가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어려울 때 만난 하나님, 그리고 지극히 낮고 낮은 저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다리가 풀리면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그 사랑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도 살아야지요. 그물이 찢어질만큼 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낚는 만선의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혜승수산은?
김임권 장로가 대표이사로 있는 (주)혜승수산은 2통의 선단을 운영하며 근해에서 고등어와 멸치를 잡는 회사다.

대형선망어업에서 1통의 선단은 본선 1척과 집어선 2척, 운반선 3척 등 6척의 배로 구성돼 있다. (주)혜승수산은 대형선망업계에서 중상급 규모에 속하며, 선원들과 육상 근무인력 11명을 포함해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김 장로는 우리 수산물의 대내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직된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의 조합장을 2006년부터 맡고 있기도 하다. 조합장으로 활동하며 수산물 유통 구조 선진화와 국내산 고등어의 해외 수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 제3회 어업인의 날에 유공자 포상 중 최고의 영예인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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