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단 ] 동문들 "아쉽다" 반응, 빈대(비정식 기숙사생) 매점 등 이야깃거리 풍성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4년 08월 18일(월) 16:36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장신대 엘림관의 마지막 모습. |
엘림관이 수십년 간 장신대생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 오다보니 장신대 동문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기숙사에서 있었던 깨알같은 추억들이 풍성한 이야깃거리들로 회자되고 있다.
본교단 증경총회장 안영로 목사는 "1966년에 엘림관에서 지냈는데 그때는 난방이 안돼서 동대문 시장에서 탄피통을 사다가 거기에 끓는 물을 넣어 발밑에 놓고 잤다"면서, "당시는 어렵던 시절이라 식당밥이라는 게 늘 콩나물국에 반찬 두가지 정도였지만 그래도 선,후배 간에 관계가 돈독해 늘 나누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졸업생들 중에서는 '빈대'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비정식 기숙사생'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승민 목사(원미동교회)는 "서울이나 근교에 사는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등하교 시간이 아까운 학생들이 종종 친구들이 있는 엘림관에 들어가서 몰래 기거하는 일들이 있었다"면서, "또래들이 함께 모이다보니 늘 웃고, 떠들고, 고민도 나누고... 아무튼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도영 전도사(호주연합교회 캔디데이트)도 "한방에 정원이 4명인데 8명이 함께 지내는 것도 본 적이 있다"면서, "지금이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인데 제 경우에도 6개월 동안 빈대 신세를 지며 학교를 편하게 다녔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에 상주하던 직원들에 대한 기억담도 많았다. 이성은 목사(미국 풀러신학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언제나 새벽이면 찬양이 울려퍼졌고 관리 집사님께서 '전도사님들~ 새벽기도회 가셔야죠~ 빨리 일어나세요~'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복수의 장신대 졸업생들은 엘림관 지하에 있던 매점에 대해서도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한 졸업생은 "매점을 운영하시던 권사님이 기억력이 특별하셔서 재학생들 대부분의 이름을 불러줬었다"면서, "그 매점에서 팔던 떡만둣국과 떡볶이 맛이 그립다"고 기억했다.
▲ 매우 낙후했던 엘림관의 내부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