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의 아버지, 이연호 목사 ...그를 다시 추억한다

빈민의 아버지, 이연호 목사 ...그를 다시 추억한다

[ 문화 ] 유동식 최종식 교수, 화가목사 이연호 평전 출간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4년 07월 08일(화) 14:12
   
 

일제시대 춘천고등학교에서 선후배 사이로 고 이연호 목사와 첫 인연을 맺었다는 유동식 명예교수(연세대)와 한국인물전기학회 회장인 서울대 최종고 명예교수가 이연호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화가목사 이연호 평전'(한들출판사 펴냄)을 펴냈다.

유 교수는 "누군가 이연호 목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해 왔고 때마침 최종고 교수가 이 목사의 생애와 예술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넝마주이 부랑인 고아 과부 등 전쟁으로 인한 이재민들이 모여살던 이촌동 한강변에서 빈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동거동락했던 '빈민의 아버지' 故 이연호 목사를 다시 한번 추억할 수 있게 됐다.

'헐벗은 자의 친구, 빈민의 목회자'로 유명한 이연호 목사는 3ㆍ1 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9월 2

   
 
3일 황해도 안악에서 5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춘천고 시절 상록회 사건으로 4년의 징역을 살았으며, 이 시기 톨스토이와 춘원 이광수, 가가와 도요히코의 서적에 크게 감화를 받았다.

"톨스토이는 철저한 복음주의의 정신으로 국가권력과 법도 무관심 내지 부정하고 오직 사랑으로 자연스런 인간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뜨거운 용기가 솟았다"고 회고한 이 목사는 이를 통해 "이 민족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고 후일 사랑과 자비 비폭력과 평화의 정신을 추상적으로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활로 실천하며 가난한 자,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행동으로 직결시켰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거지 아이들을 기숙사에 데려와 자기 방에서 재우며 기숙사에서 주는 죽을 나누어 먹었던 것도, 이촌동의 대규모 빈민 밀집지대가 그의 목회의 현장이 된 것도 그 곳에 교회를 세우도 그들을 위해 무료 병원을 세운 것도 모두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춘천고 후배인 유 교수는 이 목사를 "학생 시절 그는 검은 학생복 단벌로 기억된다. 양복의 팔목이 헤어져 몇 번 기워 늘린 것"이라고 추억했다.

실제로 고 이연호 목사는 평생을 검정색 단벌 양복에 똑같은 넥타이, 낡은 가죽가방 차림의 소탈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떨어졌으나 가방을 들고, 헤어졌으나 외투를 입고 그들의 앞을 지나왔다… 나의 생활이 최저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들을 대할 때마다 죄를 짓는 듯한 괴로움을 느낀다"며 빈민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교회 건축을 위해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미국 로렌스대학 유학시절 수채화가인 디트리히 교수로부터 2년간 사사했으며 귀국 후에는 대한 미술협회와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동양화랑에서 제1회 미술전을 개최하기도 한 그는 '화가 목사'이기도 했다. 1966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를 창립한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 동서양이 조화된 이촌동교회도 직접 설계했으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한국의 기독교 미술을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아마추어 작가'라고 소개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 속에 뛰어들어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온 이연호 목사. 가난과 무지 조차도 아름답고 따뜻하게 담아낸 화가이자 성직자 고 이연호 목사에 대해 유동식 교수는 "그는 타고난 화가요, 시인이요, 목회자였다. 실로 그의 평생을 바친 빈민목회와 그의 고난에 찬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설교요 예술이었던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한편 이 책은 고 이연호 목사의 예술과 신학을 정리한 유동식 교수의 논문을 비롯해 이 목사가 직접 본보에 연재한 회고록, 이 목사의 작품 소개와 이를 토대로 한 삶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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