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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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찬,세계를보다 ] (11)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

윤은주 박사
2024년 10월 08일(화) 00:05
우리는 그리스와 로마에 이어 중세 시대를 이해할 때 은연중 유럽 중심의 사관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 굳어진 미국 중심의 역사·문화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고트족, 반달족, 훈족, 몽골족 등이 '야만인'으로 서술되는 것은 로마제국 이외의 문명을 낮춰보기 때문인데 우리도 그대로 답습할 때가 많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의 역사를 아시아적 시각으로 이해한다면 뭐가 달라질까? 유라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더 깊은 이해와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구 터키)의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간직한 인류사적 고도(古都)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비잔티움을 수도로 정한 뒤 콘스탄티노플은 서로마 붕괴 이후에도 천 년 동안 동로마 제국의 중심이었다. 5세기에 구축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천혜의 요새로서 외침을 막았다면, 동서 교역의 요충지로서 입지는 상공업을 번창케 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로마는 유럽 세계의 중추였는데,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후로 중세와 근대가 구분되기도 한다.

중세 시대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결로 점철된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뿌리는 멀리 돌궐까지 올라간다. 몽골제국 등장 이전 동북아시아 북부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최대 유목제국을 형성했던 돌궐제국. 튀르크의 한자어 음차인 돌궐은 552년에서 745년까지 두 차례 제국 통치기를 거쳤다. 당나라에 패한 뒤 서쪽으로 흩어져 지금의 스탄국들과 튀르키예 등의 민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1037년 등장한 셀주크 장군은 1055년 이란의 바그다드를 비롯,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등지를 점령하여 셀주크 튀르크 제국을 이루기도 했다.

960년 등장한 셀주크 장군의 손자 토그릴은 1037년 국가를 세웠다. 셀주크 국은 1071년 만지게르트 전투에서 동로마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러나 셀주크 제국은 이후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고 동쪽에서는 몽골이 습격해오면서 멸망하고 만다. 오스만 일가는 분열된 군소 부족 중 하나로, 아나톨리아 서부 발레지크에 기반한, 4만 텐트 십만 군대를 이끄는 중소규모 부족이었다.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남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로 뻗어나간 오스만제국은 수니파 이슬람의 수호국이 되었고 비잔틴제국에 가장 큰 위협이었다.

무라토 1세는 국가체제를 형성하고 발칸반도를 점령했다. 1353년부터 1371년까지 동로마가 봉신국을 자처하기도 했는데, 1387년 '술탄' 칭호를 받아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았고 최정예부대인 예니체리를 창설하기도 했다. 메흐메트 2세는 1453년 23차례 공격에도 정복하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헝가리 출신 우르반이 개발한 8미터 대포를 사용하고, 육지로 배를 옮기는 기지를 발휘하여 골든혼과 마르마라, 보스포루스 바다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성을 정벌한 것이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개칭되어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됐다.

오스만제국의 중흥기를 펼쳤던 술레이만 1세는 제국 확장의 꿈을 갖고 헝가리 왕국의 봉신 국 세르비아의 수도 벨그라드와 로도스섬을 점령하면서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유럽진출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를 놓고 유럽 왕국들의 연합군대가 결성되면서 멈춰 서게 됐다. 당시 고사 작전을 펼치던 오스만 군대가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커피가 비엔나를 기점으로 전 유럽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은 커피뿐만 아니라 후추와 향신료, 실크, 종이 등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 온 각종 물품을 유럽에 전파했다. 오스만제국의 팽창이 대항로 시대를 여는 한편, 비잔틴제국의 멸망은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을 유럽으로 이주시켜 중세 이후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두 이질적인 문명의 충돌이 인류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1453년 이후 약 100년간 오스만제국은 황금기를 누렸으나 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제국의 역사는 끝이 났다. 역사적으로 쌓아 온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험 속에서 인류를 위한 미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윤은주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외교광장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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