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이양, '왕국 건설' 아닌 '하나님 나라 건설' 위해

사역 이양, '왕국 건설' 아닌 '하나님 나라 건설' 위해

[ 땅끝편지 ] 말라위 강지헌 선교사<4>

강지헌 선교사
2023년 11월 24일(금) 14:25
말라위 치의대생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지헌 선교사.
'사역 이양'이란 말 그대로 일을 남에게 넘겨준다는 뜻이다. 이 넘겨주는 작업에 대한 이론도 다양하고 여건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의견들도 많다. NGO 등의 개발사역과는 조금 다르게(하지만 요즘의 개발 NGO 사역 또한 영적인 부분이 함께 하는 것을 권장하는 논문들도 꽤 여럿 있음을 본다.) 선교사의 사역은 선교사 개인의 사역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 혹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때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며, '이양'이란 청지기로서 그 관리자 역할을 넘겨주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고 여겨진다.

15년여의 몽골에서의 사역을 뒤로 하고 2015년에 말라위로 입국을 했다. 첫 2년 동안은 개발기구에서 일을 하느라 치과사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2017년부터 치과를 개설하고 치과대학에서 강의 사역을 시작했다. 몇 년 후에 후원 교회의 도움으로 수련병원을 건축하게 되고 2023년부터 말라위에서의 치과사역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됐다.

교단 선교부에서 정한 공식 은퇴시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을 수련병원을 잘 이양하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잡고 일을 하고 있다. 새로이 문을 연 국립치과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들 중에 좋은 자원이 나오길 기도하고 있다. 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눈을 주시길 기도한다.

몽골에서는 치과대학생들과 진료봉사를 많이 다녔다. 몽골은 지리적 특성상 이동이 어려운 지역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학생들과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가 됐다. 눈길에 빠진 차를 다 함께 밀거나, 시골을 오가며 길을 잃기도 하는 그런 시간들을 통해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고, 서로 간에 신뢰를 쌓은 좋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면서 복음에 눈을 뜨게 된 일부 학생들과 함께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했고, 그들 가운데 제자가 나오는 역사도 생기게 됐다. 그 제자들 중 두 명에게 몽골에서 사역하던 치과 병원을 이양했다. 하지만 내가 몽골을 떠나고 5, 6년간 잘 지내던 그들이 갈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성령께서 바로 준 마음은 이것은 해체가 아니라 세포분열이라는 것이었다. 성장하기 위해서 세포분열은 필수적인 것 아닌가? 당연히 성장통도 있는 것이다. 그 둘은 갈라졌지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치과가 두 개가 되었다. 이미 한 제자는 거의 전 직원과 함께 말라위까지 와서 난민캠프 진료를 했고, 다른 한 제자는 말라위로 일년간 단기 선교를 왔던 또 다른 몽골 치과의사를 일 년 간 후원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이양에 대한 확신을 주는 일들이었다.

사역의 이양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할 말이 많으리라 추측된다. 이양을 꼭 해야만 하는가? 해야만 한다면 왜 이양을 해야 하는가? 또 누구에게 이양을 할 것인가? 이양의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양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가 선교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배운 이론들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선교라고 하는 일 자체가 통합적인 것이기에 몇 가지 이론으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이양 과정도 그 지역의 문화와 각자의 사역에 따른 특수성 내지는 성황에 따라 적절히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몽골에서는 감사하게도 주변에 총명한 치과대학생들과 훌륭한 치과의사들이 많이 있어 그들과 함께 하며 아주 어렵지 않게 계획을 세워 이양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 과정 중에 받은 특별한 조언이 나를 자유롭게 풀어줌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 진정 겸손하게 엎드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선교사의 사역이 그 선교사의 부재 이후에도 남아 있으리라 믿지 마라. 그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성령의 몫이다.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었고 그것은 오히려 내게 편한 마음으로 이양 준비 작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말라위에서의 사역 이양은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거의 매 순간 하며 일을 하고 있다. 몽골에서와는 달리 주변 환경이 매우 소박하고 의료인의 숫자도 현저히 부족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이 기회를 지혜롭게 잘 사용을 해야겠다 다짐한다. 첫 졸업생이 1년 후면 배출되니 해마다 배출되는 새로운 치과의사들 중에 수련의를 선발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욱 늘리다 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시선이 꽂히는 자원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 시선을 나도 느낄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리라, 하지만 꼭 그들 가운데 적절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한들 어떠하리. 선교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선교의 조력자 역할일 뿐이고 선교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청지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선교사의 청지기 임무는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이 하나님 나라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잘 하는 것이고 어느 순간 그 다리 역할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히 세우는 일이 선교사의 사명임을 믿으며 오늘도 나는 또 한 발을 내 딛는다.

강지헌 선교사

총회 파송 말라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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