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의 땅, 말라위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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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편지 ] 말라위 강지헌 선교사<3>

강지헌 선교사
2023년 11월 22일(수) 09:29
말라위의 마을 모임 모습.
마을 교회 모습.
아프리카의 남동부에 위치한 인구 2000만 명 정도의 내륙국가인 말라위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Warm Heart of Africa)'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별명만큼이나 국민들의 심성은 매우 부드럽고 따뜻하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그 어느 나라보다 치안이 안전한 편이어서 밤에 다닌다든가(물론 차로), 낮에 도보로 걸어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다른 선교사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여서 이렇게 평온한 말라위에서도 강도나 절도 사건은 늘 있게 마련이다. 단지 이런 일을 전할 때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문제는 있을 수 있겠다. 선교사로서 자기가 사역하는 사역지의 환경을 너무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전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신이 섬기는 현지인들의 상황까지 왜곡하는 우를 범하게 되기에 항상 조심 스럽다.

평화를 추구하는 말라위 사람들을 보면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가난하다보니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때로 거칠고 폭력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말라위 현지인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개는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듯 보인다. 그래서 젊은 말라위 청년들에게 왜 저항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위를 그대로 참고 넘어 가느냐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부분의 대답은 그 상대방과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데.

말라위에는 잘레카(Dzaleka)라는 6만여 명 규모의 난민캠프가 있다. 그들 중 대충 65% 정도는 콩고 민주 공화국 출신이고, 나머지는 브룬디, 소말리아 등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온 사람들이다. 자기가 살던 고향에서 내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 말라위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사실 콩고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은 말라위에 비하면 경제적으로는 훨씬 부유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왜 이 가난한 나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말라위에는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을 한다. 분쟁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안락함보다는 신체적, 정신적 평안이 더 중요한 것이리라.

왜 말라위 사람들은 이렇게 순할까? 여러 계층의 말라위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대충 두 가지의 대답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우리는 크리스찬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가능하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한다(물론 그 크리스찬적 삶의 방식은 지극히 선별적이긴 하다). 남들과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그 상대방을 용서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 아닌가?" 라고 말한다. 감동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선교사가 자신의 직원이 공금 횡령을 한 정도의 큰 잘못을 하여 화를 내고 혼을 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직원이 하는 말은 "왜 당신은 기독교인이면서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그렇게 웬만하면 용서가 통하는 문화라서 그럴까? 신문 1면은 공무원들의 독직, 횡령 사건 같은 부패한 공무원들의 기사들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해서 해석하는 말라위의 기독교 문화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둘째는 말라위에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자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농사마저도 천수답이 대부분이다. 강수량이 적은 해는 주식인 옥수수 수확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전형적으로 기후에 의존하는 농업의 형태이다. 수출품도 거의 없고 매년 담배 잎을 다국적 담배회사에 팔아 외화를 버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담배의 수요가 줄어드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그나마도 점점 줄어 들고 있다. 그러하니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날 길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특별히 눈독들일 만한 것이 없으니 외침도 없고 부족 간에 분쟁도 없다. 더 나아가 종교 간에도 분쟁 조차도 거의 없는 편이다. 한 2년 전쯤에는 어느 개신교 목사가 공적으로 무슬림 사회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무슬림 사회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 목사들로부터 왜 분쟁을 조장하냐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평화를 추구하고 분쟁을 지극히 싫어하는 민족성인 것 같지만 성숙한 시민 사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왠지 분쟁이 두려워 본질을 회피하고 가장된 평화 안에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종종 타문화 선교를 준비하는 예비 선교사들로부터 말라위 선교사로 오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 같은 전문인 선교사의 경우야 사역이 미리 결정되고 올 수도 있지만 목회자 선교사의 경우 무슨 사역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 묻는 경우도 많다. 그때 마다 "많은 교회 가운데 하나가 아니면 좋겠다"는 말하는 것 말고 딱히 명확한 답을 드리거나 사역을 안내해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한 일이다. 흔히들 가난한 나라이니 구제사역이 필요할 것이다, 농업국가이니 농업사역도 좋겠고, 말라위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적 기본이 약하니 교회지도자들 교육도 좋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사역을 최종적으로 이끌고 가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나의 생각을 내려 놓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고 나아가는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선교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기도 하다.

말라위의 기독교인 비율은 거의 80%에 육박한다. 시골에서 촌장 모임을 할 때나 공공 기관 또는 정부에서 관리들이 회의를 할 때 항상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는 정도이다. 자신이 속한 부족에 따라 자신의 종교가 정해지는 경우도 많다 보니, 무슬림도 같은 경우이다. 명목상의 크리스찬이 많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말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기도 한다. 그들에게 가르치려 들거나 물량 공세로 다가가기 보다는 먼저 그들에게 배우고 함께 동역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선교사로 남기를 기도한다. 선교는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나는 다만 그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할 뿐이다.



강지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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