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태워 희망을 밝힌 사람들

슬픔을 태워 희망을 밝힌 사람들

[ 현장칼럼 ]

강호 목사
2023년 11월 03일(금) 11:08
"아빠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도너패밀리가 홀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단했던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첫째가 10살, 둘째가 6살 무렵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남편을 떠나보낸 그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힘들고 바쁜 삶을 살아왔다. 갑작스럽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줄곧 전업주부로 지낸 그가 일자리를 찾고, 경제활동을 하며 아이들까지 돌본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아마도 본인이 밤낮으로 일한다 한들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힘든 시간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덕분인지 간절한 기도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행히 몸도 마음도 건강히 성장했다. 그 중 첫째 아이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진행한 D.F장학회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아버지 없는 설움과 슬픔으로 마음의 생채기가 여러 번 났을 법도 한데 장학금 전달식 내내 아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침 전달식에서 그 아이가 대표로 소감을 전했다. "장기기증은 환자들의 어두웠던 길에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나눔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아버지를 본받아 따뜻함과 봉사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이 일었다. 사실 아이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현장에 홀로 있었다. 딸과 오붓하게 산책을 나선 길에 기증인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때 고작 10살이었던 아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아버지가 곧 깨어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뇌사'라는 판정이 내려졌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생전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온 아이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일 중 하나가 생명나눔이라고 생각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해둔 상태였다.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아이의 간절한 기도는 다른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귀결됐다. 어린 마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아버지가 세상에 생명으로 남긴 사랑은 어린 자녀의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다. 씨앗에서 싹이 움트고 차근차근 자라 푸른 나무가 되기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시련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그 씨앗이 아이의 삶에 자긍심을 일깨웠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기기증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고, 수많은 생명을 살린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생명나눔은 환자들의 어두운 삶을 밝은 빛으로 밝혔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아픔도 온기도 뒤덮는 등불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도너패밀리 활동을 하며 내가 만난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은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 아이처럼 큰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그리고 그 지혜는 자신의 부모들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선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태워 환자들의 삶에 희망을 밝힌 사람들.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과 그 가족들이 기증인이 남긴 사랑을 뿌리 삼아 더 힘차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이들이 나눈 사랑이 돌고 돌아 결국에는 자신들의 삶을 충만하게 채우기를 기도한다.

강호 목사 / 도너패밀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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