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은 아직 진행형

인생의 후반전은 아직 진행형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완>

장지연 목사
2023년 10월 31일(화) 15:14
오스트라바 교회의 교인들과 함께한 필자.
장지연, 한성미 선교사와 두 딸 의정, 의현 양.
어느덧 마지막 회가 됐다. 청탁을 받고 10회 분량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막막했는데,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못 다한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처음 오스트라바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겪은 시행착오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러면서 배운 게 많으니 하나도 아쉬울 것은 없다. 초기에는 체코인들 사이에서 나 자신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음을 자주 느꼈지만, 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열심히 다가갔다. 그런데 정확한 날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코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이웃이 된 것이다.

이번 연재에서 현재 필자가 섬기고 있는 오스트라바 선한이웃교회를 거의 언급하지 못했다. 두 가정이 교회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리며 2013년 시작한 이 한인교회가 어느덧 10살이 됐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주로 회사 업무로 길면 4~5년 정도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장기적인 양육이 어렵다. 현재 10명 남짓 모이는 연약한 공동체지만, 필자는 매주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기 위해 힘쓴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동시에 실레지아의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연약한 시골교회를 비롯해 소외된 이웃이나 선교단체들을 설립 초기부터 섬기고 있다.

가족이 출석했던 교회의 빌렘 목사님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나는 영어로 소통하기를 원했지만, 빌렘 목사님은 영어를 할 줄 몰라 대화가 막히곤 했다. 내가 열심히 체코어를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체코어를 서툴게 말해도 빌렘 목사님은 인내심 있게 귀를 기울여 주셨다. 만남이 쌓일수록 우정도 깊어졌다. 지금은 서로의 표정만 봐도 속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감사한 것은 빌렘 목사님이 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편의 제공 등 도움도 주신 것이다. 우리 가족이 현지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있을 때 다른 한인 가족이 교회를 찾아왔는데, 그들 역시 체코어로 진행되는 예배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록 두 가정이지만 한인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예배 장소 임대를 위해 빌렘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빌렘 목사님은 "우리가 이미 한 식구가 되었는데, 무슨 임대료를 받겠는가. 교회의 모든 시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용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인 예배는 시작됐고, 2013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교회의 모든 시설들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체코 교인들의 관심과 배려를 받고 있으니 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무척 감사한 일이다.

실레지아 지역에서 교회들과 동역하며 연약한 체코 교회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현지 목회자들 사이에서 필자가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또 다른 사역이 사회복지시설 '실레지아 디아코니아'와의 협력이다. 초기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부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역이 이뤄졌다. 그리고 다른 선교 기관들과의 동역도 빼놓을 수 없다. 체코에는 오래 전부터 전도와 선교를 감당해 온 풀뿌리 기관들이 있다. 필자는 언젠가 사역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이곳 기관들의 활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해 온 일들을 더 힘차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무게를 뒀다.

나와 아내는 조용히 지내며 목회자인 것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아파트 주민들은 이제 필자가 목사이자 선교사인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하루는 집 앞에서 주차를 하고 있는데, 약간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이 지나가면서 "일 마치고 귀가하세요?"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더니, "당신은 주말에 일하는 사람이지요"하며 웃는 것이었다. 평소 눈인사 정도 나누는 이웃도 내가 목사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앞으로도 이들과 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복음의 지경이 넓혀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묵묵히 나의 곁에서 동역해준 아내 한성미 선교사와 의젓하게 잘 자라준 두 딸 의정이와 의현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문도 모른 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체코 땅에 들어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어쩔줄 몰라 했던 두 딸이 잘 성장해 주었다. 이제는 둘 다 성인이 돼 체코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선교사로서 투신하고 있는 내 인생의 후반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의 마지막 고백을 말씀으로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장지연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