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출신 구 부인의 산 믿음

궁녀 출신 구 부인의 산 믿음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39

한국기독공보
2023년 10월 26일(목) 03:47
20년 전(1899년)까지 구씨 부인은 왕후를 시중드는 궁녀로 일했다. 당시 그녀는 신실한 불교도였고 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준수했다. 육식을 멀리했음은 물론 불교의 가르침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왕후는 나이 들어 궁궐을 떠나는 구 부인에게 광양에 있는 왕실 소유의 땅 중 얼마를 떼어줬다. 평생을 바친 종이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일종의 포상이었다. 구씨는 아들과 두 며느리와 함께 서울을 떠나 전라도로 내려왔다. 구 부인이 다른 지방으로 출타하던 중 '예수교회'라는 간판이 쓰인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함께 갔던 동행이 구 부인에게 "우리 한번 들어가 구경이나 해보자"고 말했다. 그날이 마침 주일이었고 예배 중이었다.

구 부인은 설교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설교자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심장에 부딪쳐왔다. 생전 처음 듣는 설교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그녀의 중심을 사로잡았다. 예배가 끝날 즈음 어느덧 그녀는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돌아온 그녀는 아들을 불러 "너도 예배당에 가서 말씀을 듣고 믿도록 하라"고 권했다. 술 주정뱅이였던 아들은 교회에 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어머니의 성화를 견디지 못한 아들은 효도하는 셈치고 한번 나가보기로 했다. 20리나 떨어진 교회까지 가야 하는 길은 아들에게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그날 예배는 아들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지만 그는 두 달 동안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했다. 믿고 싶어 나온 것이 아닌 탓에 그의 술버릇은 여전했고 갑작스런 삶의 변화는 없었다. 어느날 그의 심경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에 아주 조금씩 믿음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 믿음이 생기자 이 믿음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이후로는 술을 입에 대기가 싫어졌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교인으로 등록했다.

아들의 친구 가운데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유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농부였고, 다른 사람은 꽤나 평판이 있는 한의사였다. 모두 술주정뱅이 시절 가깝게 지내던 관계였다. 두 친구 역시 그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그들 역시 복음의 능력에 감동되어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 신실한 신자로 거듭나 한 사람은 집사가, 다른 사람은 영수가 되어 교회를 섬겼다.

구 부인의 나이가 60세가 되었으나 80여 명의 신도 가운데 어느덧 가장 열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에서 열흘간 계속되는 부인 성경공부반이 열리자 구 부인은 100km를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매년 그렇게 했다.

믿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더니 실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구 부인의 나이가 듦에 따라 그녀의 백발이 하얗게 변해 갔지만 그녀의 심령은 조금도 노쇠하지 않고 새로워졌다. 언제나 그녀는 말씀을 지극히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주님의 딸'이었다.

그녀는 또한 훌륭한 전도인이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전도인으로서 그녀의 발길은 언제나 바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든지 생명의 복음을 전했다. 궁궐에서 살았던 할머니의 힘 있는 증거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존중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구 부인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로 나온 사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하늘의 복을 지상에서 맛본 여인이었다. 언젠가 순천 선교부의 고라복 (R. T. Coit) 선교사가 순회 전도를 하면 길을 올라가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고 목사님!"하고 소리치며 가파른 산을 올라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구 부인이었다. 그녀가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동행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구 부인의 아들은 이제 확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교회로부터 세례를 받기가 어려웠다. 첩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를 떠나 마땅한 생활 대책이 없는 그녀를 무작정 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런 가운데 그의 첩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 그는 세례를 받았고 교회의 영수가 됐다.

구 부인은 장수의 축복도 누렸다. 80세를 넘기며 영육간에 축복도 받았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녀의 몸은 날로 쇠잔해졌지만 그녀의 영적 활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교회를 위한 봉사와 불신자를 위한 전도사역도 이전보다 더욱 열심이었다.

전라도 광양 지방에 사는 성도들 가운데 구 부인에게 사랑의 빚진 자들이 많다. 모두가 사랑의 빚진 자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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