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내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

체코 내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8>

장지연 목사
2023년 10월 17일(화) 14:59
여름 캠프에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과 함께한 필자(뒷열 가운데).
전쟁 시작부터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체코로 넘어왔다. 체코 내무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4월 1일까지 50만 4107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체코 정부로부터 임시 보호를 위한 비자를 발급 받았다고 한다. 현재 체코 영토에는 32만 5000명의 난민이 남아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오스트라바에도 난민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시내에 위치한 난민센터를 찾았더니 엄청난 인파의 난민들이 실내에 가득했고, 입국 신고와 임시 보호를 받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난민센터 바로 옆 건물에는 난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져다 준 물건이 잔뜩 쌓여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분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고, 체코도 마치 전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미 체코 내의 수많은 NGO 단체, 교회 등 민간단체들이 난민 지원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필자는 난민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도울까 고민하는 가운데 주위 상황을 살펴보았다. 오스트라바 인근 시골 마을인 스밀로비체에 있는 수양관에 난민들이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더니 40명 정도의 여성과 아이들이 있었다. 후원교회들에서 보내준 선교비로 이곳에 냉장고, 유모차 등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해 주었다.

며칠 뒤에는 동역교단인 실레지아 루터교단 본부를 찾았다. 이곳도 난민들에게 숙소 제공은 물론이고 체코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체코어 강좌, 심리 상담, 자녀 돌봄 프로그램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난민 사역은 현지 동역교단과 필자의 분명한 협력 사항이었기에, 한국교회의 관심을 전하며 적지 않은 재정을 지원해 주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물품을 직접 차량으로 전달하는 팀을 알게 돼 생필품 구입에 힘을 보탰으며, 오스트라바 난민센터에서 일하는 책임자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선발해 재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여러 모양으로 사역을 펼쳤는데, 필자는 전쟁 이후 체코 사회의 변화를 중심으로 선교사로서의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첫째로 체코로 몰려든 우크라이나 난민들로 인해 현지 동역교단과의 에큐메니칼 협력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은 선교사 개인의 활동보다 동역교단과 연대하고 협력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큼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크라이나 인접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현재 난민 사역과 관련해서는 체코 외에도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여러 국가 선교사들이 열심히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각 선교지의 난민 사역 정보를 공유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2022년 12월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의 회고와 전망을 위한 포럼'을 갖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선교사들은 난민 사역 데이터를 정리해 자료로 남길 수 있었고, 난민 사역에 대한 신학적 성찰도 필요함을 공감했다.

두번째로 달라진 점은 난민 문제에 대처하는 체코 사회에 대해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체코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물밀듯 들어오자, 수많은 민간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반응했다. 정부 차원의 대응은 절차가 복잡해 느릴 수밖에 없었는데, 민간 단체들이 난민을 수용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우려됐던 사회적 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민 문제에 대처하는 체코인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체코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캠프시설에 모아 집단적으로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고, 체코 시민들도 기꺼이 집을 개방해 난민들과 동거함을 택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여기저기서 변화가 감지된다. 체코는 우크라이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지원으로 인한 피로감, 인플레이션, 에너지 비용 등에 대한 부담으로 시민들의 자발성이 많이 약해졌고, 정부의 지원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런 중에도 교회는 여전히 난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 번째로 달라진 점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체코 사회에 정착하게 되면서 난민 사역의 형태가 보다 자연스럽게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난민들에게 숙소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생계와 자립이라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아울러 자녀들은 고국과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적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의 부재, 체코 사회에 대한 적응 문제로 어려워한다. 어떤 아이들은 여전히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긴급 구호에 초점을 맞춰 사역이 진행됐지만 갈수록 여성과 자녀 교육에 중점을 둔 돌봄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과 지원도 많이 줄어든 것같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이지만 한국교회가 우크라이나를 향한 관심과 기도를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지연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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