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려운 집시 사역

언제나 어려운 집시 사역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7>

장지연 목사
2023년 10월 10일(화) 15:47
전주시온성교회 청년팀의 협력으로 진행된 집시 자녀 프로그램에서 한자리에 모인 참석자들.
체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집시(Gypsy)다. 이들은 체코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자주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다. 집시족은 피부색이 진하다 보니 일반 체코인들과는 구별되며, 교육 수준이 낮고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체코인들이 집시 가족과 이웃으로 지내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집시들도 열악한 형편 때문에 체코인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서 생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통 집시들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호스텔이나 주택으로 이사한 후 그들끼리 모여 살며 게토(ghetto)를 형성하게 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오스트라바에도 집시들이 모여 사는 게토 지역이 있다. 필자는 쿤치체 지역에서 집시 자녀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파부치나'라는 이름의 선교기관과 오랫 동안 협력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필자의 선교를 돕고자 선교지를 방문하는 팀이 있으면 파부치나에 연락해 집시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그들을 초대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러 선교팀이 방문해 집시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가진 바 있는데, 한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지난해 5월 전주의 한 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청년부가 여름에 단기선교차 방문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였다. 출입국 때 별도의 코로나19 검사를 거쳐야 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상황이 많이 진정됐고 무엇보다 청년팀이 온다는 얘기에 덜컥 방문을 수락했다. 하지만 방문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준비할 일들이 많았다. 체코에 난민으로 입국한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사역도 준비했지만, 아울러 집시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즉시 파부치나 책임자에게 청년팀의 방문 소식을 전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방문하는 청년팀 역시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열심히 노력해 이곳을 방문했다. 이틀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한국의 청년들과 집시 자녀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아쉽게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예상한 만큼 아이들이 오지는 않았다.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석했다. 날씨가 무덥기도 했지만 그날 그 동네의 많은 집시 가족들이 지역행사에 참여하느라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는 귀띔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참석한 집시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순서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찬양과 율동, 레크리에이션, 케이팝 워십, 소그룹 활동 등 다양했다. 그렇게 첫날의 만남은 마무리됐다.

방문 둘째 날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첫날 참석했던 아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는지 두 배 정도의 인원이 참석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첫날의 어색한 공기는 사라지고 시종일관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율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몸짓에 힘이 실려 있었다. 둘째날 프로그램 역시 알차게 진행됐다. 레크리에이션, 소그룹 활동뿐 아니라 여성 중창, 악기 연주도 있었고, 특히 복음의 내용을 태권도 동작에 접목시킨 태권무언극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집시 아이들이 한국 청년팀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들도 선물로 집시춤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집시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참석했던 한 집시 아이의 고백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청년들과 즐거운 시간도 많이 가졌지만 순서 가운데 하나님은 집시족 아이들도 사랑하시고 자신들 역시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가 고맙고 자신에게 큰 힘이 됐다는 고백이었다. 그 고백을 들으니 청년팀의 방문이 헛되지 않았으며 그동안 준비하고 수고했던 일들에 대해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집시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으려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체코 사회 속에서 배제를 수없이 겪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차별과 무시 속에 놓여 있는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해 주고 그들 역시 사랑 받을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선교 기관과 사역자들이 내 곁에 있으며,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감사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파부치나에 위기가 찾아왔다. 2월 어느 날 파부치나 책임자인 이보(Ivo)의 아내 렌까(Lenka)가 보일러 폭발사고로 중상을 입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부부는 나와 10년 넘게 동역했으며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신실한 사역자 가정이어서 안타까움이 컸다. 이 부부에게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 큰 딸을 제외한 세 명의 자녀는 입양 아동들이다. 나는 한국의 후원교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서 부디 렌까 사역자가 속히 일어날 수 있기를,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며칠 후 렌까는 깨어났지만 화상, 비장 파열, 기관지 손상 등으로 여러 치료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의사가 놀랄 정도로 회복이 빠르게 진행됐고, 현재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그녀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실감했다. 파부치나와의 동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장지연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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