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다시 성례전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때이다

신학을 다시 성례전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때이다

[ 신학 ] 사회생태윤리로 풀어보는 교회와 사회 이야기(10)

박용범 교수
2023년 09월 21일(목) 08:37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기본소득제도의 실행을 위한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영국 런던대학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는 자신의 책 '공유지의 약탈'에서 "공유지(commons)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모든 자연자원과 우리 조상들이 물려주었고 우리가 보존하고 개선해야 하는 모든 사회적·시민적·문화적 제도들을 말한다"라며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공유지는 자연·사회·시민·문화·지식 공유지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공유지에는 토지, 숲, 물, 광물, 공기, 하늘, 바다 등이 해당하고, 사회 공유지에는 치안, 우편, 대중교통, 도로, 공공주택, 돌봄 서비스, 보건의료 서비스 등이 포함되며, 시민 공유지에는 사법에 대한 권리 등이, 문화 공유지에는 예술, 대중매체, 공공도서관, 공공건축, 미술관 등이, 그리고 지식 공유지에는 정보, 지식, 교육 등이 속한다는 것이다.

창조 신앙과 관련하여 성서는 우리에게 자연 공유지로 분류된 모든 것이 성례전적(sacramental)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성례전은 일종의 상징으로 이를 통해 창조세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솜씨와 숨결을 현재의 사실로 경험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태양 에너지를 재료로 하여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만든 떡과 빵은 매순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과 창조의 능력을 나타내고, 인간은 이것을 먹으며 하나님의 신성한 메커니즘을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체험한다. 그러므로 창조세계의 공유지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은 거룩한 작업이다. 하늘 양식을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나눌 수 있는 성례전의 식탁에 모여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게"(사도행전 14:17) 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방식이다.

성례전성(sacramentality)은 특정한 물질적인 실체와 의식을 넘어 지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주와 창조세계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확장된다. 토마스 베리(Thomas Berry)에 의하면 우리가 생태위기의 모든 차원에 대응할 수 있는 신학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 기초가 되는 세상에 존재하는 신성한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자연세계 자체를 존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 과학과 우주론의 도움 없이는 이것을 할 수 없다"('지구의 꿈', 164)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의 영성에 대한 관심은 역사와 인간의 자유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었고, 기록된 글을 해석하는 데 너무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으며, 점차 창조세계의 성례전성과의 접촉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하늘과 궁창(시편 19:1)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제 신학을 다시 성례전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때이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46:10, 새번역)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누가 이처럼 복잡한 지구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는지, 누가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위치시켜 지구의 모든 존재가 타거나 얼지 않도록 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하늘과 은하의 광대한 운행과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완벽한 지구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서의 제한된 언어에 기록된 과학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생의 소란과 혼동 속에서도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초대받고,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여전히 하나님께서 잠잠하게 하시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의 지구에 거주하는 우리의 자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대기 오염과 같은 창조세계 파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구체적인 방향을 묻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하늘과 공기가 공유지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용범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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