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회 협력으로 영속적 소망의 서사 구조 형성해 가야

교회 사회 협력으로 영속적 소망의 서사 구조 형성해 가야

[ 신학 ] 사회생태윤리로 풀어보는 교회와 사회 이야기(4)

박용범 교수
2023년 07월 27일(목) 07:42
어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윤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띤다. 종종 적합한 윤리적 규범이나 가이드라인을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발견하여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단언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은 삶 전체를 아우른다"라는 확신은 오늘날 교회가 자신의 이야기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유지하기 위해 온전한 신학을 지속적으로 구성할 필요성을 요청한다.

이렇게 구성된 통합적인 신학은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체계를 갖추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게 하고, 세월이 흘러도 단절되지 않고 후대로 이어져 가도록 기여한다. 본회퍼의 지적대로 "하나님의 계명은 금지할 뿐 아니라 삶을 위하여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잘못된 삶을 멈추게 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항상 동행하며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학이 성서의 본질적인 메시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사회를 섬기는 학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에 기초한 불변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그들의 행위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지적처럼 "신학 작품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우리 시대를 위한 적실성 있는 성서 읽기"를 통해 계속해서 현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정기적으로 성례전에 참여하면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십자가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화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하우어워스의 지적대로 기억(remember)이라는 영어 단어를 분리하여 생각해보면 그것은 '다시 모이는'(re-member) 교회중심의 공동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증인으로서 사랑과 섬김의 디아코니아 사명을 받아 사회를 향해 다시 흩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문제의식을 실천과 삶이 아니라 단지 신념에 대한 것으로만 왜곡한 현대 교회는 사회에 대하여 책임적인 존재가 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기능을 축소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사회생태윤리를 그리스도교 영성과 연관지어 설명할 때 중요한 점은 참된 영성이란 결코 현실의 상황이나 문제의식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영성이 깊어질수록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회생태적 실천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 세상에서 나눔의 삶을 이어간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가 되는 것은 행함과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야고보서 4장 13~17절에서는 경제적인 이익에만 치중하여 인생의 가치관을 품는 허탄한 생각을 경고하면서, 때로는 우리의 수고가 선행과는 거리가 먼 헛되고 악한 자랑에 머물 수도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교회가 존재론적인 위기에 처한 이 때에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 가난하고 연약한 존재들이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불평등한 피해를 입는 것과, 다수의 생물종이 멸종으로 치닫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교회와 사회가 협력하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영속적인 소망의 서사 구조를 형성해가야 할 것이다.

박용범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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