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서서평 선교사 별세 후, 전남 부인조력회

1934년 서서평 선교사 별세 후, 전남 부인조력회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29

한국기독공보
2023년 07월 27일(목) 03:38
1933~1955년까지 전남노회 부인조력회 회장을 맡은 사라 뉴랜드의 가족사진.
1934년 6월, 서서평 선교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빈자리에 선교사들과 부인조력회 임원들의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영적 지도자의 죽음이 부인조력회 전체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에 있지 않았다.

주님의 각별한 은혜가 전남연합회에 생수처럼 부어졌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주님이 또한 즐거워하시는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대리 선교사의 부인인 사라 앤드류 뉴랜드(Sarah Andrews Newland)가 1934년 12월에 쓴 보고서는 남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다음은 그 보고서 내용이다.

23년 전(1911년) 막 결혼한 새내기 신부로 광주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한국 여성지도력의 부재가 선교 사역에 가장 절망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지만, 4000년간 제한된 사회적 권리만을 가진 과거탓에 아직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의 모든 여성이 글을 읽지 못했고 남편, 남자 형제, 또는 아버지에게 종속된 존재일 뿐이었다.

그때 궁금했다. 이렇게 헌신적인 크리스천 여성들이 미래에 지도력을 꽃 피울 날이 올까? 세월이 흐르며 내가 가진 두 가지 착각은 완전히 부서졌다. 한국인들이 서양의 곡조(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과, 한국 여성들이 현지 교회에서 책임을 맡을 재능이 없다는 것이 두 가지 착각이었다. 내가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부분을 언급했다면 잊어주길 바란다. 내가 완전히 잘못 알았다는 것을 이제 기쁘게 인정한다.

이제 막 끝난 우리 전라남도 노회의 부인조력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이번 노회는 이틀 동안 진행됐고, 두 번째 밤은 자정을 훨씬 넘기면서까지 계속됐다. 처리할 회무가 많았거나 한국인들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0일간에 걸친 여성 성경 수업 때문이었다. 400명의 여성들이 매일 아침 공부했고 노회를 위한 시간은 오직 오후시간이나 밤 시간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회의엔 청중이 넘쳐났고 시골 여성들에게 행동하는 노회임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모든 임원들은 한국인들이었다. 실무를 전담하는 부서조차 선교사들은 고작해야 우리 4명이 전부였다. 한국인 여성들은 위엄과 재능을 갖고 회의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의장을 맡은 김필례 부인은 아무리 칭찬해도 충분하지 않다. 그녀는 쉐핑 양과 함께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쉐핑 양은 이 노회의 사역에 생명을 쏟아 부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사역엔 같은 손실이 있지만, 이제는 한국인들이 훌륭히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이번 노회는 지금까지 내가 참석한 노회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 노회를 마치는 순간이 정말 아쉬울 정도였다.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준 이야기가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첫날 밤, 각 조력회 대표들이 각자 보고서를 발표했다. 창평(담양의 옛지명)조력회 대표가 일어나 보고를 했는데, 그녀는 매우 수려한 얼굴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옷차림은 매우 부유한 가정 출신인 듯 보였다. 그녀는 보고서를 읽은 후 그 조력회의 일원들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얘기했다.

창평조력회의 다른 임원은 조력회의 희생을 이야기하면서, 방금 보고서를 읽은 젊은 여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 여인이 견딘 지독한 핍박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5년 전 크리스천이 됐다. 이후 조상이 섬기던 종교를 거부하며 여러 번 무자비하게 매를 맞았다. 제사 음식도 거부했고, 음식을 준비하는 하인들 옆에 있는 것조차 거부해 남편이 몹시 분노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육신을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을 해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포기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매를 맞더라도 교회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결혼 전 갖고 있던 모든 패물과 아름다운 것들을 다 팔아 교회에 기부했다.

이 젊은 여인의 한쪽 얼굴과 눈두덩이에 매우 심한 멍이 있고 부어올라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교통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최근 남편에게 맞아서 그런 것이었다.

의장 김필례 부인은 지난 5년간 이 여인이 겪은 핍박들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의 목록을 말하는 것 같았다. 몇 개를 빼고는 매우 흡사했다. 우리는 크게 동요했지만, 이 여인을 위해, 그리고 아직도 핍박 받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날 밤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특권에 대해 어찌나 감사하던지.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역을 여러분과 여기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노회의 이 여성들은 내년 국내와 해외 선교 헌금을 20% 인상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거기 앉아 투표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홍수로 벼농사가 엉망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희생이겠지만 그들은 구세주를 위해 기쁘게 감당할 것이다. 여러분과 제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면 될까? 주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믿음 주시기를 원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나라에 기회의 문을 놀라운 방법으로 열어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다.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러한 희생을 해야 할지라도 주님께선 우리 남장로회가 전진하기를 기대하신다고 믿는다.

우리 주님께 최선을 다하자.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자. 주님께서는 주님께 드린 과부의 푼돈을 결코 꾸짖지 않으셨다. 그 돈은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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