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길과 복음의 길

로마의 길과 복음의 길

[ 구약학자가 본 바울의 길 ] 비아 에그나티아 ⑩

하경택 교수
2023년 06월 22일(목) 10:48
산 중턱에 닦여 있는 비아 에그나티아.
비아 에그나티아 지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비아 에그나티아' 답사 기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비아 에그나티아' 실제 모습을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리의 답사 일정을 도시 중심으로 정리하면, 그리스에서는 데살로니가, 에데사, 플로리나가 있었고, 북마케도니아에서는 비톨라, 스코페, 오흐리드가 있었으며, 알바니아에서는 티라나, 두러스, 아폴로니아가 있었다.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알바니아 티라나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는 택시를 이용했다. 요금을 140유로로 합의하고 오흐리드에서 출발하여 티라나로 향했다.

국경을 넘어가는 도중에 우리는 '비아 에그나티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구간을 방문하기 위해 산중마을을 찾았다. 현지 지명으로는 다르헤(Dardhe)로 불리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용한 택시기사는 길이 너무 험해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해서 산중 마을에 사는 현지인의 차를 섭외해야 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산중 마을에서 차를 바꾸어 타기 위해 머물렀던 그 순간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계곡 사이로 커다란 무지개가 떠올랐다. 더없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비아 에그나티아'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깊은 산중까지 찾아온 우리 일행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표징으로 느껴졌다. 더 이상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노아와 맺으신 언약의 무지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창 9:13).

우리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뒤로 하고 마을에서 섭외한 낡은 벤츠를 타고 더 깊고 높은 산 중턱으로 이동했다. 20여 분 달렸을까 눈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로마시대 '비아 에그나티아'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길이 등고선을 따라 산 너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알바니아 다르헤(Dardhe)에서 만난 '비아 에그나티아'는 산 아래의 계곡이 아니라 산 중턱의 길이었다. 고산준령의 길을 닦아 '비아 에그나티나'를 만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트래킹 코스로 택하기 좋은 길이지만, 길을 만들 때나 이용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길이 있었기 때문에 높은 산으로 막혀있던 지역이 연결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통해 오갈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좀 더 이동하자 계곡이 나타났다. 그런데 조금 전 내린 비로 계곡의 물이 넘쳐나 차로는 건너갈 수가 없게 되었다. 차에서 내려 우리는 다리를 이용하여 건너편을 다녀왔다. 현대에도 이러한데 고대에는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으랴! '비아 에그타니아'는 말 그대로 인생의 험로와 같이 각양각색의 난관을 극복하는 역사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산중에서 내려와 엘바산(Elbasan) 외곽에 있는 아드 퀸툼(Ad Quintum)도 방문했다. 아드라아 해를 건너 두러스와 아폴로니아에서 시작된 '비아 에그나티아'가 만나는 곳이다. '비아 에그나티아'의 중간 휴게소와 같은 곳이며,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면서 들렀던 '트레이스 타베르네'(행 28:15)와 같은 곳이다. 주후 2세기에 만들어진 목욕시설의 유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데모크러시'(Democracy)에 빗대어 '도로가 지배하는 세계'라는 뜻으로 '드로모크러시'(dromocracy)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용어는 '스피드가 지배하는 세계'라는 말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길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던 오스만제국은 길들을 팔에 비유했다. '비아 에그나티아'는 발칸의 '왼팔'(Sol Kol)이라 불렀고, 북서쪽 베오그라드에 이르는 길은 '중앙팔'(Orta Kol), 북쪽 우크라이나까지 이르는 길은 '오른팔'(Sag Kol)이라고 불렀다. 로마가 발칸과 소아시아 지역 정복을 위해 닦은 길이 훗날 오스만제국에 의해 서방세계를 정복하는 일에 이용된다. 남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길이 훗날 내가 공격당하는 길이 된 것이다.

길은 이렇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정복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정복당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비아 에그나티아'는 바울에게 2~3차 선교여행을 위한 길로 사용되었다. 로마가 닦은 길이 '복음의 길'이 된 것이다. '비아 에그나티아' 답사 기록을 마치며 나의 길을 생각한다. 오늘 내가 걷는 길도 바울의 길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복음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는 '복음의 길'이 되길 소망한다. 나의 길을 마치며 바울처럼 고백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



하경택 교수 / 장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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