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쓰기는 신앙의 유산이다

성경 쓰기는 신앙의 유산이다

[ 목양칼럼 ]

박상용 목사
2023년 06월 14일(수) 10:17
구텐베르크는 이동식 인쇄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인쇄술은 종교개혁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인쇄기의 보급으로 다량의 문서가 쉽게 제작됐고, 많은 이들에게 정보가 신속하게 전해졌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은 양면성이 있다. 성경을 필사하던 이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됐고, 필사 과정에서 얻는 감동도 사라졌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성경의 보급은 필사본으로 전해졌다. 필사 성경은 희소성이 있었기에 그 가치 또한 높았다. 인쇄술의 발달은 소중했던 가치들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개척 초기 '쪽 성경쓰기'를 했다. 사순절에 범위를 정해 전교인이 함께 성경을 쓰는 방식이었다. 성도들의 손때가 묻은 필사성경은 제본이 돼 교회의 역사 자료로 남겨졌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성경 쓰기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옮겨졌다. 현재 19차 성경 이어쓰기가 진행 중이니 긴 세월 동안 이어 온 셈이다.

필자의 서재에는 성경 필사본이 여러 권 있다. 그 중 가보처럼 여기는 성경은 장모님이 직접 써주신 필사본이다. 장모님은 60대에 암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성경쓰기를 시작했다. 지금껏 쓰신 필사본은 4권이다. 그 중 한 권을 황금색 보자기에 싸서 필자에게 주셨다. 서재를 정리할 때마다 보자기를 풀어본다. 일관되지 않은 필체지만 정성을 다한 필체에 장모님의 신앙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장모님은 암 수술 후 30년 가까이 은혜 가운데 살고 계신다. 필연, 성경필사라는 삶의 목표가 힘이 되셨으리라.

성경필사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우리 교회에는 올해 83세가 된 어르신 집사님이 계신다. 집사님은 현재 5번째 성경필사를 하고 있다. 집사님은 70평생 교회와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가 자녀들의 권유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쓰기를 시작했다. 성경쓰기는 보통 2년에 전권을 완성하게 된다. 집사님이 쉬지 않고 성경쓰기를 한 세월이 10년이다. 성경을 쓰면서 집사님의 삶은 많이 변했다. 주초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문의 장손으로서 이어오던 제사 문제도 해결됐다. 지금은 매일 성경 쓰는 재미로 산다고 하신다.

성경필사의 영향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필사가 완성되면 봉헌식을 갖고 있다. 봉헌식 때마다 성도들이 감동을 받는다. 감동은 전염성이 있다. 미용실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자신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손님이 없는 틈틈이 쓰기 시작한 성경이 두 번째이다. 미용실 책꽂이에 꼽혀 있는 필사성경은 은혜와 전도의 도구가 되고 있다.

성경쓰기는 신앙의 유산이다. 기독교 초기 믿음의 선배들은 성경필사에 목숨을 걸었다. 특히 박해의 시기에는 은신처에 숨어서 말씀을 기록했다. 그와 같은 헌신이 오늘의 성경을 있게 했다. 성경을 펴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을 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쓰기'는 뇌의 기억력을 활성화시킨다. 필자의 경우 설교를 작성할 때, 책을 읽을 때 기록하는 것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 나만의 방법으로 기록해 둔 메모는 기억을 오래 지속시키는 유익이 있다. 하물며 성경말씀을 쓰는 이들에게 총명함과 분별력의 은혜가 어찌 아니 임할까.

박상용 목사 /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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