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선교사들이 만난 한국인 이야기

1931년 선교사들이 만난 한국인 이야기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23

한국기독공보
2023년 06월 15일(목) 16:57
전국의 여전도회원들이 서울 여전도회관에 모여 교육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열린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제54회 72연합회 임원단수련회. / 한국기독공보 DB
1931년 4월 4일에 변마지(Margaret F. Pritchard)가 쓴 편지에는 광주지역 여성 성경공부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여성 성경공부방 모임에 600여 명이 참석해 성경을 배우고, 건강한 생활습관과 수칙, 그리고 이가 나쁜 여성들을 어떻게 치료해주었는지 세세히 나온다.

당시 변마지는 광주 제중원 간호선교사로 부임한 지 겨우 7개월째였다. 이후 1934년 2월 서서평이 쓰러지고 6월에 사망할 때까지 곁에서 간호하며, 서평의 비전을 함께 나눠 가졌다. 해방 후부터 변마지는 전주 예수병원으로 전출됐고 1970년 은퇴할 때까지 기전간호전문대학(현 예수대)을 세워 간호 전문 인력을 길렀다. 서서평 선교사가 조선에서 가장 먼저 이루고자 했던 간호전문 인력의 꿈을 변마지를 통해 이룬 셈이다.

다음은 변마지가 쓴 편지 내용이다.

나는 한국을 즐기고 있다. 한국은 아름답고, 한국인들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5센트를 쓴다. 한국인의 경제 상황이 너무 빈곤해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곳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기쁨이다.

내가 처음 광주에 부임했을 때, 병원에 사는 작은 여자 아이를 만났다. 4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병원 앞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이름은 간호사가 지어준 이름으로, 한국말로 '줍다'라는 뜻이었다.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였지만, 이 병원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한국인 가정에 입양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한국에선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아이를 구세군 고아원에 맡기고, 한 달에 5달러씩 지불했다. 아이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었다.

최근 여성들을 위한 10일간의 성경 공부가 끝이 났다. 500여 명의 여성들, 100여 명의 어린이가 참여했다. 그들은 좁은 바닥에 모여 앉았다. 먼 거리를 왔는데도 10일간 성경 공부를 위해 큰 불편함을 참아냈다. 그들 중 일부는 하루에 한 끼만 먹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의료진들은 위생을 교육했다.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특히 어린이들의 식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티푸스 환자를 돌보는 방법도 이야기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오이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이는 반쯤 먹고 버려진 것으로 보였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이었고, 많은 티푸스 환자들이 집에서 아파하고 있었다.

# 못 말리는 쉐핑

1931년 9월, 서평은 금강산에서 열린 장로교 부인전도회 총회에 남장로회를 대표해 참석했다. 그런데 서평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어느 조선인 목사가 금강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빚을 갚지 못한 여성이 식당으로 팔려가고 있는 상황을 발견하고, 서서평 선교사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받은 자'가 있다면 이 경우가 바로 그 경우일 것으로 여기며, 팔려가는 여성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어린 소녀는 종종 주일학교에 참석도 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요청했다.

당시 서서평은 그해에 적어도 세 명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 어린 소녀는 서평에게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다가왔다. 여전도회 총회로 가는 길목에서 사람과 영혼을 구하는 일에 즐겁게 반응했다. 그에게는 그녀를 생명의 길로 훈련하는 특권이 있다고 확신했다.

외국인 여성 선교사로서 조선 사람의 인권에 애써 모른 체하며 눈 감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서평은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신속하게 즉각 응답하는 것이 서평의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금강산에 모여 전국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이 모여 하나님의 선교를 논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 구하는 일거리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일이다.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여성은 조선 천지에 널려 있다. 내가 아닌 돈 많은 조선 사람이나 같은 동족인 조선 사람이 할 일이라고 여겼다면, 이 여인의 생명은 가치 없게 여겨졌을 것이다.

서서평의 삶에서 가난한 이와 고통 받는 이에 대한 연민과 자비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응답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관념적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도움을 필요로 외치는 갈급한 기도에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 셈이다.

그 일로 도움을 받은 소녀는 매주 주일에 나가서 그녀가 아주 놀랍게 경험했던, 예수님과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삶을 살았다. 주체할 줄 모르는 사람, 서서평이 저지른 사랑의 구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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