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를 깎다

비트를 깎다

[ 동인시선 ]

박은혜
2023년 06월 09일(금) 10:00
비트를 깎다



날선 신문 모서리에 손가락이 베인 아침에

뼛속까진 붉은 무

비트를 사각사각 깎는다



핏물이 고인 살갗이 드러날 때마다

동네에 있는 교회

하나님이 없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오른다



2000년 전 골고다 언덕길을

십자가를 등에 지고

힘겹게 걸어가던 예수에게

돌을 던지던 관중들의 거친 눈빛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평온한 얼굴로

거리를 걸어가는

나의 가슴에 새총처럼 박힌다



그 아픈 기억을 칼날로 한 꺼풀 베어낸다

비트에서 핏물이 흘러내려 손바닥을 적시고

내 몸의 실핏줄을 타고 심장 속으로 흐른다



환한 웃음 뒤에 숨은

무표정한 얼굴로

노숙자를 외면하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비트를 한 입 베어 문다

내 굳은 심장이 떨어진다

꽃빛보다 붉은 울음이 주님께 달라붙는다



시 박은혜 / 제 9회 기독 공보 가작 당선·제자교회 목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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