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성화와 성인들의 조각상 ... 녹스의 흔적은 사라져

화려한 성화와 성인들의 조각상 ... 녹스의 흔적은 사라져

[ 존녹스로드순례기 ] 5. 성 니콜라스 교회

김승호 교수
2023년 06월 03일(토) 10:00
뉴캐슬이 성 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


약 2년간 베릭교회에서 사역한 존 녹스는 1551년 여름 뉴캐슬의 성 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로 사역지를 옮긴다. 이 교회는 이전 사역지 베릭교회보다 큰 규모의 교회였다. 존 녹스의 설교가 베릭 시민들의 도덕적 양심을 깨우쳐 범죄율을 낮추는데 기여했듯이 뉴캐슬에서도 그의 설교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녹스의 설교를 듣기 위해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뉴캐슬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1558년 제네바로 망명한 녹스가 거기서 뉴캐슬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목회자로서 녹스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얼마나 가식 없이 올곧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하나님이 아시고 그것을 여러분 스스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두려움 때문에 여러분에게 거짓 없는 진리를 선포하기를 망설이거나 세속적인 출세, 위선, 또한 명예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의든 설교든 주장이든 글이든 성경 일부를 고의로 훼손한 적도 없음을 아실 것입니다… 나는 명예도 영광도 재산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이 나의 명예이고, 주님의 진리의 빛이 여러분 안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영광이며, 여러분이 변함없이 그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사실 나의 재산입니다." (책 '존 녹스 로드' 233면)

뉴캐슬 중심가에 위치한 성 니콜라스 교회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예배당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문양으로 장식한 웅장한 모습의 세례반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다 각종 동물과 새의 모습이 화려하게 그려진 여러 개의 문장은 세례의 의미를 더해 주는 듯 했다. 1400년 경에 만들어진 이 세례반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뉴캐슬을 잉글랜드의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일으켰던 상인 로버트 로데(R. Rhodes) 가문의 재정지원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세례반이 예배당의 서쪽 맨 뒤, 즉 입구 쪽에 놓여 있는 이유는 세례가 기독교 신앙의 가족에 입회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 한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들과는 달리, 성 니콜라스 교회 내부는 화려한 성화와 성인들의 조각상이 비치되어 있었다. 성경의 주요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하여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은 예배자를 신비한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 듯했다. 이 교회는 성 니콜라스 주교를 기념하여 설립한 교회이다.

그는 AD 260~280년 경 터키 남부지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신앙교육을 통해 헌신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했으며, 부모 사후에 유산 전부를 빈자를 돕는 데 사용했고, 젊은 나이에 미라(Myra)의 주교가 되어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아이들과 선원들의 수호성인이자 동시에 그의 선행과 박애주의 정신으로 인해 산타클로스의 기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외에도 안내문에는 1736년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던 찰스 아비손(Charles Avison)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데, 그는 18세기 당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이자 다양한 악기연주자이며 음악저술가로, 뉴캐슬이 왕성한 음악의 도시가 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이 교회에서 사역한 지 약 6개월 후에, 존 녹스는 런던으로 이동했다.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6세가 존 녹스를 궁정 목사 중 한 명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존 녹스가 설교자로서 영국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성 니콜라스 교회 투어를 마친 후 필자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예배당 내부 어디에서도 존 녹스에 대한 기록이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교회가 영국성공회 소속의 교회이므로 장로교에 속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주역 존 녹스를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그렇다고 해도 이 교회에서 사역한 존 녹스로 인해 16세기 당시 뉴캐슬이 복음으로 꽃피웠던 역사적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아쉬움으로 남지 않을 수 없었다.



김승호 교수/영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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