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기독교의 선교사 키릴 형제

비잔틴 기독교의 선교사 키릴 형제

[ 구약학자가 본 바울의 길 ] 비아 에그나티아(5)

하경택 교수
2023년 05월 11일(목) 16:53
블랙 드림 샘(Springs of Black Drim)에서 오흐리드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물.
맑은 오흐리드 호수와 멋진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흐리드.
오흐리드(Ohrid)는 이번 답사 여정에서 아픈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버스와 택시로 이동하다가 처음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렌터카를 인도받아 운전을 하는데 날이 저물기 전에 나움(Naum) 수도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력을 내다가 과속으로 벌금을 부과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오흐리드에서 경험한 것들은 이런 아픈 추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오흐리드에 가면 무엇보다 먼저 오흐리드 호수를 만나게 된다.

오흐리드 호수는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면적이 348㎢에 이르고, 해발 695m에 위치해 있으며, 깊이가 285m나 된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오흐리드 호수의 물이 모이게 되는 과정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호수의 50% 정도의 물이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20% 정도가 강이나 강수로 생겨난 물이고, 나머지 20%를 웃도는 물이 가까이에 있는 프레스파(Prespa) 호수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샘물은 약 45개의 작은 샘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그중 30개의 샘은 호수의 물속에 있다고 한다. 샘에서 흘러나오는 수원지로서 가장 유명한 것이 나움 수도원 곁에 있는 블랙 드림 샘(Springs of Black Drim)이다. 나움 수도원에 가면 배를 타고 수원지를 직접 방문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샘물들이 모여 생겨난 호수이기 때문에 수심 20m까지 관찰이 가능할 만큼 맑고 투명하다. 이 때문에 오흐리드 호수는 '유럽 최대의 우물'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이런 호수를 가지고 있는 오흐리드(Ohrid)는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80년에는 이곳의 건축, 예술, 종교 분야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흐리드에는 더욱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사가 있다. 스승과 제자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선교의 역사이다. 오흐리드 항구 옆 공원에 가면 세 개의 동상을 만난다. 하나는 키릴(Cyril, 826~869 출생)과 메토디우스(Methodius, 815~885) 형제의 동상이고, 다른 하나는 클레멘트(Clement, 830/ 840~916)의 동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나움(Naum, ca. 830~910)의 동상이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서 발칸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부끄럽게도 오흐리드에 오기 전에는 이들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 키릴은 키릴 문자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키릴 형제와 그의 두 제자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키릴과 메토디우스는 형제로서 비잔틴 기독교의 신학자이자 선교사였다. 그들은 '슬라브인들의 사도'(Apostles to the Slavs)로 불릴 만큼 슬라브인 선교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두 형제는 데살로니가에서 태어났다. '키릴의 생애'(The Life of Cyril)에 따르면 그는 일곱 형제 중 막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콘스탄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죽기 직전에 로마에서 수도사가 되면서 키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형 메토디우스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폴리크론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면서 메토디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형제의 정확한 민족적 기원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이 슬라브인인지 아니면 그리스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862년, 이 형제들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 전개된다. 대(大)모라비아(Great Moravia) 왕국의 슬라브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된 것이다. 863년, 그들은 복음서와 필요한 전례 서적을 슬라브어 문자 언어(Old Church Slavonic)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들은 이 임무를 위해 슬라브어 사본에 사용되는 최초의 알파벳인 글라골(Glagolitic) 문자를 고안한다. 특별히 복음서와 예전 서적들을 번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들이 고안한 문자는 훗날 슬라브어 알파벳으로까지 발전한다. 이 알파벳은 슬라브 언어의 특성에 적합하도록 고안되었기에, 이 문자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키릴 문자가 대부분의 슬라브 세계에 퍼져 동방 정교회 슬라브 국가의 표준 알파벳이 된 것이다. 따라서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의 글라골 문자 발명은 단순히 대(大)모라비아 왕국의 선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의 문자 발명은 동유럽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길을 닦은 일이 되었다.

하경택 교수 / 장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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