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설교로, 도덕성 회복 이뤄

감동적인 설교로, 도덕성 회복 이뤄

[ 존녹스로드순례기 ] 4. 베릭교회

김승호 교수
2023년 05월 05일(금) 10:00
베릭교회의 전경.
베릭교회 예배당 안.


운전대를 잡은 필자는 존 녹스의 탄생지 해딩톤을 떠나 베릭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스치는 바람을 마주하며 한 시간 만에 베릭 시에 진입했다. 대로변에 접한 교회를 발견하고 빈자리를 찾아 주차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을 압도하는 교회의 첨탑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교회 입구에 이르니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에 들어온 교회명은 다른 이름의 교회였다. 분명 네비게이션에 베릭교회 주소를 입력하고 왔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교회 끝부분에 다른 교회 입구가 있는 걸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베릭교회'(Berwick Parish Church)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베릭교회 입구였다.

열려 있는 정문 입구를 통과하여 예배당 건물까지 가는 길 양쪽에는 수많은 비석이 이방인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은 잔디 위 비석들이 따가운 햇빛을 피할 그늘이 되어주고 있었다. 예배당 건물 입구에 도착한 필자는 너무나도 허름하고 낡은 예배당 건물의 외관을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배당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매우 낡은 상태였다. 다행히 베릭교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여러 개의 안내판이 벽에 게시되어 있었다.

프랑스 갤리선의 노예가 되어 갖은 고초를 겪은 존 녹스는 1549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6세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후 녹스는 왕의 자문기관인 추밀원의 임명을 받아 베릭교회에 부임해서 약 2년간 목회 사역을 감당했다. 당시 베릭 시는 범죄와 도덕적 타락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러나, 녹스의 감동적인 설교가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 시민들의 도덕성 회복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의 베릭교회가 녹스가 설교하던 당시에 건축된 교회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현재 교회의 설교단이 녹스가 설교할 때 사용했던 설교단이라고 생각한다.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할 때까지 녹스는 잉글랜드의 개신교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설교자로 남아 있었다.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한 후에 로마 가톨릭 배경의 메리 여왕이 집권함으로, 개신교 형태의 예배가 금지되었고, 박해를 피해 녹스는 유럽대륙으로 건너갔다.

세월이 흘러 1641년에 이르러 베릭시장 벨립스와 베릭 시 하원의원들은 당시 잉글랜드 왕 찰스 1세에게 교회 재건축 모금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청원을 하여 허락받았다. 그 결과, 잉글랜드 전역에서 건축기금이 모금되었다. 1650년에 주춧돌이 놓였고, 1652년에는 완공되지 않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1662년 더람 주교가 교회를 헌당할 당시에, 교식통일령을 거부한 베릭교회의 룩 오글(Luke Ogle) 목사는 사임을 요구받았다. 그 이후 베릭교회는 여러 번의 증축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베릭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먼저, 1641년 교회 재건축을 시작한 지 21년 만에 교회를 헌당했다는 사실이다. 장기간의 교회 재건축은 단지 건축경비나 건축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성도들의 연합 과정을 통하여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의식이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룩 오글 목사가 교식통일령을 거부하자 사임을 요구받았던 사실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찬식의 떡과 잔을 받을 때 무릎을 꿇고 받는데, 이 행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었다. 당시 영국성공회는 성도가 무릎을 꿇고 떡과 잔을 받는 행위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지만, 가톨릭과의 완전한 단절을 원하던 개신교의 룩 오글 목사는 그런 행위를 일종의 미신행위로 보고 이를 거부한 것이다.

셋째, 녹스의 설교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베릭 시 전체에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한 목회자의 설교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 공적 영역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조 이후로 하나님의 통치가 그러했듯이, 기독교 신앙은 교회 내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 영역의 변화에 대한 비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승호 교수/영남신대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