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탄생과 확산의 발판이 된 도시 '펠라'

기독교 탄생과 확산의 발판이 된 도시 '펠라'

[ 구약학자가 본 바울의 길 ] 비아 에그나티아(4)

하경택 교수
2023년 05월 04일(목) 13:59
펠라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알렉산더 대제의 대리석 두상
펠라, 이 도시에서 발견된 유적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펠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진 도시다. 그것은 펠라가 알렉산더라는 대(大) 영웅을 배출했다는 점이다. 펠라는 고대 마게도냐의 수도로서 필립 2세가 마게도냐 왕국을 통일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은 20세에 왕위에 올라 13년간의 동방 원정으로 동서양을 융합하는 헬라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가 태어나 자랐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로부터 군사 전략가로서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고, 당대 최고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 역사, 문법, 음악, 기하학, 수사학, 의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식을 넓힐 수 있었다. 훗날 그는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에게 고귀한 삶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을 높이 평가했다.

짧은 시간에 알렉산더 대제가 이룩한 헬라 제국은 단순히 영토를 넓힌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동방원정을 통해 동서양이 만나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세계화의 기틀을 놓았고 '세계시민주의'라 불리는 사상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세계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인 하나의 세계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헬라화 정책은 헬라어가 그가 정복한 전역으로 확산하는 결과를 낳게 했고, 교육, 도시계획, 지방정부, 예술 등의 헬라 문화가 널리 퍼지게 하였다. 그가 이룬 제국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 성경의 탄생이다. 구약 헬라어 번역성경인 70인경(LXX)은 알렉산더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건설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되었다. 70인경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해서 파견된 번역자들의 수에 근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본래는 72명이었으나 편의상 70이라는 어림수로 표현됨). 헬라어가 표준이 되는 헬라 세계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이 생겨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헬라어가 사용되는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쓰는 말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로마의 도로망 구축을 넘어서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도로망은 사람과 지역 간의 교류가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상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이다. 자신이 가진 사상과 신앙을 공유하고 전파할 수 있게 하는 공통된 언어야말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일상에서 쓰는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70인경은 신약성경 기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신약성경에 인용된 대부분의 구약본문이 70인경 본문이며, 이 헬라어 번역성경이 예수를 메시아로 이해하는 기독교 신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더 대제는 단순히 세계의 정복자가 아니었다. 동방원정은 그의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그의 원정은 동서양을 연결하고 세계시민주의 시대를 꿈꾼 선구자적 행동이었다. 이번 답사 중 플로리나(Plorina)에서 만났던 한 그리스인이 알렉산더 대제는 '기독교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했던 말이 생각난다.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통해 세워진 헬라 제국은 로마에 의해서 멸망 당하지만, 그가 이루고자 했던 헬레니즘 세계는 로마 제국 안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펠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고, 알렉산더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펠라는 기독교 탄생과 확산의 발판이 된 도시였고, 알렉산더는 세계 선교의 기틀을 제공한 왕이었다.

하경택 교수 / 장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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