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이해하려면 전체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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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으로읽는성경 ] 13."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조병호 목사
2023년 04월 05일(수) 12:58
욥과 친구들을 묘사한 일리야 레핀의 그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구절에서 "아멘"하는 것 부적절…상황과 의미 볼 수 있어야

우리는 간혹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부분에 "아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성경을 전체가 아닌 구절로 보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를 보면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이 기록돼 있다.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렘 28:11)." 이 본문은 절대로 '아멘'해서는 안 되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이다. 그런데 하나냐는 백성들이 환호할 만한 2년으로 거짓을 말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욥기'에서 "아멘"해서는 안 되는 구절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다.

'욥기'는 성경 66권 가운데 문학적인 측면만 보면 욥과 욥의 세 친구의 대화로 이루어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독특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희곡으로 세계적인 문호가 된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도 '욥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욥기'는 인간의 고난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인간에게 고난은 인간의 지혜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고난을 피하거나 잊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고난의 문제를 '우리 안에 보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욥이 어느 날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욥의 세 친구가 찾아온다. 처음에 친구들은 욥의 모습을 보고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곁에 있어줄 뿐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위로에서 시작된 대화가 어느새 욥을 정죄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불편한 논쟁이 되고 만다. 결국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내뱉기 시작하는데, 이때 나왔던 말 가운데 유명한 말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마치 훌륭한 경구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시작이 작고 초라하지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격려하기 위해 자주 가져다 쓰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말은 말 자체로는 정말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이 누구의 말이고 어떤 상황에서 나왔으며, 그리고 하나님이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셨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말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욥의 친구들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이 욥과의 논쟁 가운데 욥을 괴롭게 한 말이다. 심지어 이 말은 이후에 하나님이 빌닷을 비롯한 욥의 친구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실 정도로 잘못한 말 중에 하나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와 맞선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헛소리와 같은 말이다.

빌닷이 욥에게 이 말을 한 배경은 처음에는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는 말을 하다가 차츰 욥이 이러한 고난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인과율(因果律)의 차원에서 논쟁으로 번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깊은 논쟁을 해도 욥이 끝내 친구들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고 결백을 토로하며, 엘리바스와의 논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자 수아 사람 빌닷이 나선다. 빌닷은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며 욥의 자녀들이 분명 죄를 지었고 그 결과로 인해 하나님께서 처벌하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니 비록 욥의 자녀들이 그들의 죄로 죽었으나 이제라도 욥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게 하셔서 '시작은 미약하나 결국 창대하게 하실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빌닷은 욥이 지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이라는 조건으로 행한다면 그의 고통이 치유되고 다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인과율적인 논리로 말한 것이다. 이처럼 빌닷이 욥의 자녀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공의로 해석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욥의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사탄의 제안으로 계획된 시험적 고난이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빌닷의 발언은 욥에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어떤 답도 찾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다. 결국 오랫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마침내 욥에게 세상의 시작과 하나님의 세계 경영에 관한 폭풍 같은 질문으로 찾아오신다. 그러자 욥이 어떤 답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고통과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권한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된다. 한편 하나님은 욥을 괴롭힌 세 친구를 용서하시는 조건으로 욥을 통해 '중보기도'와 '번제'를 드릴 것을 요구하신다. 욥의 세 친구는 논쟁을 통해 욥에게 했던 수많은 헛소리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욥 42:8)."

성경을 통으로 읽지 않고 구절로 떼어 읽으면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하나냐와 빌닷처럼 성경의 줄기를 놓친 안타까운 사람들의 길을 따르는 것과 같다. '통(通)성경'은 성경 전체를 틀리지 않게, 치우치지 않게, 선을 넘지 않고 가장 균형 있게 보는 것이다. 성경을 전체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말씀만을 찾고 전체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방향을 잃게 되고, 편향적인 성경 읽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 내용을 살펴가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그 뜻대로 성경을 보는 방법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 66권 전체를 파편화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균형 있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병호 목사 / 성경통독원 대표·하이기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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