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선교의 꿈

땅끝 선교의 꿈

[ 구약학자가 본 바울의 길 ] 비아 에그나티아(2) - 바울의 길, 천상의 길 2

하경택 교수
2023년 04월 06일(목) 08:52
데살로니가 비아 아그나티아에 세워져 있는 갈레리우스 개선문.
데살로니가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아고라 유적. 그 옆은 필자.
지리적 관점에서 보면 바울 선교의 '땅끝'은 세 차례에 걸쳐 변화되고 확장된다. 첫 번째 '땅끝'은 드로아 환상 사건에서 보았듯이 아시아이었고, 두 번째 '땅끝'은 로마서 15장 19절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오늘날의 발칸반도였으며, 세 번째 '땅끝'은 로마서 15장 23절과 28절에서 볼 수 있듯이 서바나였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롬 15:19)고 말한 것은 로마서를 쓰고 있을 당시의 3차 선교여행을 통해 자신의 선교가 일단락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술에 따르면 아드라아해를 경계로 하는 발칸반도까지의 '땅끝' 선교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서바나까지 이르는 세 번째 '땅끝' 선교이다. 바울은 이처럼 선교의 범위 면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선교 범위의 변화와 확장은 바울의 정체성과 세계관의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바울은 삼중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보통은 유대인과 로마인의 두 가지 정체성을 말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헬라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말할 수 있다. 그가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요,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로마인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문화·사상적으로 헬라 문화와 사상에 정통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헬라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그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헬라인으로서 아테테 중심의 사고를 짐작할 수 있으며, 로마인으로서 로마 중심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관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라는 선교 요약을 통해 알 수 있고(롬 15:19), 헬라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관은 아덴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행 17:16-34),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관은 그가 로마를 중심 거점으로 삼아 서바나까지 전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통해서 알 수 있다(롬 1:11-15; 15:22-23, 28).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과 세계관의 토대 위에 바울의 선교가 이루어졌다. 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아시아, 발칸반도까지 선교 범위를 확장시켰으며, 끝내는 로마를 중심으로 서바나까지 이르는 땅끝 선교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이러한 지상의 길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시선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갈 4:26)을 향해 있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고후 5:1). 그래서 그는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빌 3:13-14) 삶을 살았다.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는 바울 선교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그 길을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확장되는 선교를 감당하였고,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이르는 선교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길은 로마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길은 하늘에 이르는 천국 복음의 길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기쁨을 전하는 '천상의 길'이 되었다.

하경택 교수 / 장신대 구약학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