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길, 천상의 길

바울의 길, 천상의 길

[ 구약학자가 본 바울의 길 ] 비아 에그나티아<1>

하경택 교수
2023년 03월 30일(목) 08:03
현재도 확인 가능한 로마 시대의 비아 에그나티아 유적.
비아 에그나티아 지도.
필자는 2022년 11월 14일부터 11월 23일까지 9박 10일 일정의 특별한 답사를 감행하였다. 그것은 그리스 데살로니가(Thessaloniki)에서 시작하여 알바니아의 두러스(Durres)까지 이르는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 루트를 답사한 것이다. 이 여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옛길 그대로의 '비아 에그나티아'를 찾아 나서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탐사'(探査)라고 말할 수 있고, 험난한 날씨와 험산 준령의 지리적 위험을 무릎 쓰고 가야 하는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탐험'(探險)이라는 말이 더 나을 법하기도 하였다. 이 일정은 '성지가 좋다' 방송의 안내자인 이강근 목사 부부가 '비아 에그나티아'를 소개하는 영상제작을 위해 기획한 것이었으나, 이 일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윤재 목사(우간다 선교사)와 필자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비아 에그나티아'는 바울이 선교여행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에 걸었던 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환상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말을 듣는다. 이 환상 경험을 통해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계획을 포기하고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마게도냐 지역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사모드라게를 지나 이튿날 네압볼리에 도착한다(행 16:11). 그리고 빌립보에 이른다.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로 이동한다(행 17:1). 이 가운데 네압볼리에서부터 데살로니가에 이르는 경로가 바로 '비아 에그나티아'이다.

이 길은 건설자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으로서 주전 2세기 마게도냐의 지방 총독이었던 그네우스 에그나티우스(Gnaeus Egnatius)가 명령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도로의 크기는 다른 로마 도로와 마찬가지로 약 6미터에 이르며, 다각형의 석판이나 단단한 모래층으로 포장되어 있다(참고). 바울은 바로 이 '비아 에그나티아'를 따라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 대륙으로 옮겨진 선교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6~10절은 바울의 방향전환을 매우 특징 있게 전해준다.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 비두니아로 올라가 본도까지 전도하기만 하면 지금의 터키 대부분의 지역을 아우르는 선교 여정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드로아의 환상을 통해 아시아 선교의 '땅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두니아행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울의 선교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방향이 바뀐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의 의미만큼이나 이 사건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도 흥미롭다.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출동하셔서 합동작전을 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성령'께서 바울을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6절),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7절),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바울 일행을 부르셨다(9절).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진 드로아의 환상이 바울의 선교 지평을 유럽까지 넓히도록 이끈 것이다.

하경택 교수 / 장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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