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귀국한 선교사 명단 등 자료 가치커

해방후 귀국한 선교사 명단 등 자료 가치커

[ 창간77주년특집 ] 소실됐던 제8호를 찾았다
본보 사장 함태영 목사 취임사도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23년 01월 10일(화) 08:43
8호 1면에서 사설을 클린한 장면
1946년 1월 17일 창간호를 발행한 한국기독공보는 2호부터 100호까지 발행된 신문 중 72개호가 소실된 상태로 다방면으로 소실된 신문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본보는 보관 중이던 신문은 영인본으로 제작해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한 경매 사이트에 제8호가 경매로 올라와 이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에 확보한 제8호는 창간호 제호인 '기독교공보(基督敎公報)'를 제호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발행일은 1946년 8월 31일이며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편집 발행됐다. 발행지는 '京城府四大門町二丁目八九(경성부 사대문정 2정목 89)'이며, 신문 값은 '本紙 臨時 定價 三圓(본보 임시 정가 3원)'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발행인 박용래(朴容來), 편집인 김춘배(金春培), 주필겸인쇄인 심명섭(沈明燮) 등이다. 8호 1면에 함태영(咸台永)의 '본보사장 취임사'가 편집됐듯이 당시 사장은 함태영이다.

본보는 1946년 1월 17일에 첫 신문 창간호를 발행했으며, 이번에 수집된 8호는 8월 31일자로 8개월 동안 여덟 번에 걸쳐 신문이 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8호가 경매 사이트에 올라오기까지는 고서수집가 한 분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미 고인이 된 고서수집가의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신문의 가치를 확인하고 경매에 내놓았고, 이를 확인한 독자가 본보에 이 사실을 알려와 본보가 확보에 나서면서 입수할 수 있었다.



# 기독교공보 8호 편집과 기사 내용

제8호 신문은 당시 발행된 신문의 편집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타블로이드(보통 신문의 절반 크기)판 세로 편집 10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발행되는 신문과는 다르게 1면 톱 자리에는 사설(社說)이 편집됐다. 본보가 확보하고 있는 56호(1948년 3월 17일자) 또한 1면 톱 기사 자리에 편집이 됐으며, 58호(1948년 3월 31일자)의 경우는 1면 좌측 2단에서부터 사설이 편집됐다. 제8호 사설의 제목은 '愛의 原子彈'(애의 원자탄)이다. 사설은 해방기념일(광복절) 1주년을 맞이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꼬집는 내용을 담아내며 비판적 기능의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解放記念日(해방기념일)을 當(당)하야 天恩(천은)을 感謝(감사)하는 同時(동시)에 聯合國(연합국)의 偉功(위공)과 好意(호의)를 回顧(회고)하며 正義(정의)는 必勝(필승)이라는 信念(신념)을 더하야 萬難(만난)을 突破(돌파)하고 獨立(독립)이 速成(속성) 되기를 祈願(기원)한다"로 시작한 사설은 "그러나 昨年(작년) 이날의 形言(형언)할 수 없던 感激(감격), 그 큰 期待(기대)가 돌잡이하는 오늘 아직도 實現(실현)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는 自由(자유)를 박차고 解放(해방)을 妨害(방해)하는 現實(현실)에서 呻吟(신음)하는 우리를 反省(반성)하여야 하겠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상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사설은 결론에서 "우리社會(사회)가 이같이 混沌(혼돈)한 責任(책임)을 敎會(교회)가 自負(자부)하여야한다. 世上(세상)의 소곰과 빛의 使命(사명)을 다하였드면 반드시 天佑(천우)가 더하였을 것이다. 八·一五前(8.15전)은 勿論(물론) 其後(기후)에도 牧者(목자) 信徒(신도) 敎會(교회)의 現況(현황)은 어떠하며 무엇을 하는 中(중)인가 다시 한번 내마음에 우리 敎會(교회)에 愛彈(애탄)을 터치여 먼저 聖火(성화)가 타게 하는 宗敎改革運動(종교개혁운동)이 緊急(긴급)하다 … 愛(애)의 原子彈(원자탄)이라도 土窟(토굴)에, 水中(수중)에 或(혹)은 架上(가상)에 고이모셔 두면 無力(무력)한 것이니 내마음에 우리 實生活(실생활)에 敎會(교회)에 부디처 깨침으로 聖化(성화)의 큰 불을 지르자"고 호소하는 내용에 주목하게 된다.

사설을 제외한 8호 신문의 톱기사는 '8.15記念(기념) 獨立促成祈願禮拜(독립촉성기원예배)' 이다. 기독교남부대회와 기독신민회 주최로 8월 15일 정동예배당에서 진행됐음을 순서 담당자를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렇듯 8호는 독립기념 1주년을 맞이한 특집호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획으로 '세계주일학교공과(1)'과 '세계주일공과(2)'가 2면과 4면에 '바울과 그의 서신'이라는 큰 제목 아래 '제1과 바울의 배경과 그의 초년시대', '제2과 바울이 새 생활을 시작함' 등을 각각 편집한 것으로 봐서 신문을 통한 성경공부 자료 제공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8호에서 주목할 기사는 '警鐘(경종)'이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이 코너가 이전과 이후로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신문이 소실돼 확인할 수 없지만, '基督敎公報'(당시 제호)가 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한편 8호 신문에서는 해방 이후 선교사들이 다시 귀국하고 있다는 기사가 1단 기사로 편집돼 있으나 한국교회 선교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宣敎師團來朝(선교사단래조)'라는 제목의 이 기사의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작년 해방후 조선교회를 도읍기위하야 미국에서 각파선교사들의 내왕이 계속되든 중 지난 七月(칠월)초에 장노파, 코엔, 푸레서·푸랫취, 컴잉, 린튼, 그레인·감리파 젠센, 스나이더, 빽커 제씨가 선교사로 각기교파를 대표하야 입경하여 군정 관계로 먼저 온 윌리암·피쉬어·언더우드·뻘링스 제씨와 협력하야 우리교회 부흥사업을 도읍고 前宣敎師機關(전선교사기관)을 다시차저 整備(정비)하야 사업을 계속하고 더욱 확장하리라 하는데 그들이 본국서 듯기는 조선교회는 합동되였다하므로 선교사단을 조직하야 합동교회를 함께도으려 하였드니 와서보니 각 교파가 따로 활동하므로 선교사도 각기 교파적으로 협력하기로 되였으나 될 수 있는 대로 연합사업에 힘쓰리라 한다."

이밖에도 감리교의 임시 총회 소집, 찬송가 문제 미결, 주일학교연합회 강습회, 애린선교단 주최 신학강연수찬회 등의 행사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서북교회의 수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38선 서북쪽에 있는 교회의 박해 소식을 전했다.

한편 8호의 3면에 게재된 '朱 牧師外 諸氏 殉敎者追慕會(주 목사 외 제씨 순교자추모회)를 보고!'(필자-雪松生)는 8월 19일에 추모회에 참가했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자리는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 순교자들을 추모했으며, 순서에 없었던 김구 선생이 등단해 "나도 신사참배한 사람이오"라고 말했음을 전하면서 김구 선생의 연설 내용 "… 나도 서대문 감옥에 있을 때 동향정좌하야 소위 궁성요배를 하고야 밥을 먹게 하니 어떻게 하오 밥한덩어리 어더먹고 사느라고 절을 하였으니 나도 신사참배한 사람이 아니오 나같은 북덕이 신자도 회개하고 나라를 위하야 몸을 바치려 합니다. 경찰소 열곳 두는 것보다 예배당 한곳을 세워야한다 …"를 소개했다.

특히 설송생(주간)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번 공보의 주간으로 피선될 때에 주저하였으나 어느 교파의 전속한 편견을 버리고 참회의 실을 보이기 위하야 年會(연회)를 자퇴하고 본처 목사라는 평신도격으로 하나님의 적은 종이되여 高節(고절)을 직히신 元老(원로) 함태영목사님을 뫼시고 새길을 거르려한 것이다. 이 신문은 한 교파의 기관지가 아니오 교역자의 것도 아니다. 진실로 조선교회 전체를 위하야 있는 일반신도의 공보로서 사명이 큰 까닭이다"라며 한국기독공보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있다. 박만서 기자





※ 인용된 글은 원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한자는 읽을 수 있도록 괄호 안에 한글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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