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앞두고 급식 중단될까 …'밥퍼' 건물, 철거 명령

혹한기 앞두고 급식 중단될까 …'밥퍼' 건물, 철거 명령

동대문구청 행정명령에 매일 밥 먹으러 오는 1천 여명 '불안'

이수진 기자 sjlee@pckworld.com
2022년 12월 02일(금) 07:46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지자체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아 무료급식사역이 위기를 맞게 됐다. 사진은 증축공사가 창문을 끼우지 못한 상태로 중지돼 있는 상태.
철거명령이 떨어진 밥퍼센터 건물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독거노인, 노숙인 등 소외된 이웃들의 무료급식 장소인 청량리 '밥퍼'의 증축건물이 지자체로부터 철거 행정명령이 내려져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동대문구청(구청장:이필형)은 지난 10월 건축법 위반을 이유로 사용 중단을 명령한 데 이어 지난 11월엔 철거 명령을 보내와 무료 급식 사역이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밥퍼 증축과 관련한 논란은 지난 해 연말에도 있었다. 서울시가 시유지 불법 증축 혐의로 고발했었으나,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관에 대해 지나친 행정처분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올해 초 오세훈 시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한 바 있다. 지난 3월 서울시는 밥퍼가 저소득 어르신 무료급식시설 건립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하고 토지 사용을 승낙했다.

밥퍼나눔운동본부(대표:최일도)가 사역하고 있는 건물은 법의 잣대로만 들이대면 '불법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12년 전 서울시가 이 건물을 지으면서 동대문구의 허가없이 지었고, 당시 동대문 구청장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회적 합의라며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거리 배식의 처절한 상황을 14년간 지켜본 서울시의회가 시유지에 가건물을 지어줌으로써 2002년에 실내 배식으로 전환됐으며, IMF로 배식대상이 급증하자 서울시가 가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준 건물이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이다. 공간이 노후하고 협소해 증축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직전 동대문구청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해병전우회가 사용하고 있는 4개 동의 컨테이터까지 포함해 밥퍼를 증축하기로 협의돼 증축이 시작됐다.

밥퍼 측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합법적인 등기와 양성화를 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않았고, 동대문구청은 등기하지 않은 건물에서 무료급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지난 20여 년간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새 구청장이 취임한 이후 갑작스런 태도 돌변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와 갈등이 있었을 때만해도 앞장서서 증축에 도움을 주던 동대문구청이 강제 철거, 고발, 전기공급 중단 등의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밥퍼 측은 신임 구청장과 6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동대문구청과 청장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서는 밥퍼 주변으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있고, 입주 예정자나 밥퍼 주변의 일부 세대 민원인들의 표심을 고려한 것이 주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일도 목사는 "밥퍼는 밥만 먹는 곳이 아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동료들을 만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매일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회적 약자들"이라면서, "일년 중 가장 추운 혹한기에 단전 예고와 철거 명령으로 1000명이 넘는 밥퍼를 찾는 사람들과 봉사자들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교회 등 순수 민간 모금액 15억 원으로 증축을 시작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밥퍼센터는 현재 공사중지 상태다. 구청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짓는 '신축'에 대해 허가했기에 밥퍼가 무단 증축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밥퍼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건물이 협소한 화장실,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인한 장애인들의 사용 제한, 식자재 보관창고 부족 등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던 중이었고, 서울시가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전 시장과 구두약속이 돼 있던 중 유고가 발생한 것이다. 새롭게 설계도대로 건축하는 것이 당연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과 예산 편성 등 서울시에서 최소한 3년이 소요되니 그때까지는 지금의 건물에서 밥퍼사역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서울시 실무자들과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 시장과의 구두약속은 무용지물이 됐고, 중단 없는 밥퍼사역이 진행되기 위해 전 구청장의 협력 속에 신축이 아닌 증축이 시작됐다는 입장이다.

밥퍼 측은 기존 건물을 양성화하는 방안도 있는데, 구청장이 바뀌었다고 엄동설한에 전기를 끊고 오는 9일까지 철거하라는 행정명령만 거듭하고 있는 지자체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나타내며 전국교회에 기도를 요청했다.

1988년부터 시작된 '밥퍼'사역은 34년간 국가와 지자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소외계층에 무료급식을 통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왔으며, 매년 드리는 성탄예배는 20년 전부터 문체부가 후원해 오고 있다.
이수진 기자
밥퍼 범국민 서명 3만 돌파 ... 20만명 목표        |  2023.07.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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