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에도 기억될 '희생'

100년 후에도 기억될 '희생'

[ 기자수첩 ]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2년 10월 31일(월) 17:08
한일장신대학교 교정에 있는 서서평 선교 20주년 기념비.
다수의 사역자들이 교회의 위상 하락과 교세 감소를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최근 서서평(徐舒平) 선교사의 희생적 사역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32세 나이에 홀로 사역을 시작한 외국인 여성이 당시 교회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한일장신대학교는 설립자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알리기 위한 모임을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열린 학술강연회에선 특히 서 선교사의 희생적 삶이 강조됐다.

일부 외국인 선교사들이 좋은 건물에 살며 모국의 생활방식을 고수할 때, 그녀는 조선의 농촌 여성과 같은 의복을 입었으며,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 고가의 제품이나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갖지 않았으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모든 소유를 내놓았다. 역사는 서 선교사의 말년에 대해 '재산은 현금 7전, 강냉이 가루 2홉이 전부였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담요마저 반을 찢어 가난한 이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으로 자신의 가냘픈 육신을 가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1934년 6월 26일 서서평 선교사가 별세하자 동아일보는 6월 29일자 1면 사설을 통해 '일생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동족으로서도 어려운 일인데 타국의 여성을 위해 일생을 희생한 일은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위대한 인류애야 말로 존경을 받아야 하며 칭송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경의을 표했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녀처럼 무소유의 희생적 삶을 택하면서, 그녀의 숭고한 정신은 이어졌다. 이번 학술강연회에선 '서 선교사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지금도 후배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일장신대 70년사의 기록처럼 그녀는 '말로만 가르치는 거짓 지도자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참 기독교인'이었다.

서서평 선교사의 장례예식은 1934년 6월 27일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됐다.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비기독교인, 타종교인, 외국인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참석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했고, 그녀의 교회와 신(神)에게도 존경을 표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큰 감동을 전하는 서서평 선교사의 이야기는 존경이 희생에서 나옴을 알게 한다. 자기 희생 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지도자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기억되지도 않는 이유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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