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부재를 넘어 지속가능한 평화로

전쟁 부재를 넘어 지속가능한 평화로

[ 8월특집 ] 교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1) '샬롬'의 사회를 구상한다

유영식 교수
2022년 08월 10일(수) 13:04
분단 70년 동안 한반도 평화가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국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한국교회는 계속 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한반도는 분단이 고착되면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직접적인 군사 분쟁이 효과적으로 관리되는 측면이 있지만, 남과 북은 서로가 피를 나눈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분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적대적 대결과 만성적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휘발성이 높은 남북한의 대결과 갈등은 언제든 서로를 절멸시키려는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한반도는 빠른 시간내에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평화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분단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평화는 불안정하기에 분단의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이 그 해답임이 틀림없다.

평화를 '전쟁 부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당장 눈앞의 전쟁이 사라진다면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없음이 모든 불안과 위험, 갈등과 폭력으로부터 일상의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평화는 그 이상의, '전쟁 없음+α'이어야 한다.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평화가 '있는' 상태로 넘어가야 평화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없는 상태는 단지 비(非)평화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 부재를 넘어 협력과 조화가 상존하는 긍정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분단과 6·25 한국전쟁에 따른 분단의 고착은 평화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유롭게 살아야 우리 민족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분단의 장벽은 한반도가 전면적인 전쟁 재발로 이어지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도록 작동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반해, 단순한 영토의 분할을 넘어서 민족의 분리를 고착화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민족적 일체감을 파괴하고 북한을 우리와 아무런 관계없는 국가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때로는 남북한의 평화를 파행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남북한 모두 서로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오로지 군사력만을 평화의 상수(常數)로 인식하고 분단의 장벽을 공고히 하는 일에만 올인하게 만든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에는 전쟁 부재와 평화 부재가 병존할 뿐이다.

분단으로 좌불안석 상황인 한반도의 평화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분단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논리들이 소멸해야 한다. 분단 장기화로 누적된 관성과 폐단을 재생산하는 일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정치적 수사는 소실되어야 한다. 분단으로 반사이득을 취하는 구조의 해체도 뒤따라야 한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사안의 행위 주체성을 국가가 모두 갖기는 사실상 어렵다. 분단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로컬(local)'들의 '오너십(ownership)'이 동원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의 불가피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내적 자원들을 비정치적인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그리고 그동안 국가에 비해 수동적인 참여자에 머물러 있던 행위자들이 나서야 한다. 로컬이 한반도 평화구축을 직접 이행하는 당사자로 기능해야 한다.

한반도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과제는 있다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평화통일! 현 단계 남북한은 분단정전체제로 현재의 편안함을 유지하고 당장의 두려움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분단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분단평화' 발상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분단평화는 분단의 지속성이 평화의 영속성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온다는 게 문제이다. 북한의 군사도발과 국내 정치경제 여건 등으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하나의 선택지로서 가능하다고 보이나, 분단평화를 한반도 평화로 규정할 때 여러 면에서 불안하다. 심각한 이질성과 적대성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질언하면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는 반드시 통일을 통과해야 한다. 남북이 하나의 단일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통일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통일 후에도 평화구축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이 요청된다는 점을 인정하나,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의 시작점이 평화적인 통일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현 단계 분단정전체제에 의한 평화, 즉 전쟁 부재에 따른 평화는 불안정하다. 남북한에 잠재해 있는 적대적 감정은 언제든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 더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분단의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청산해야 함을 생각하면 한반도 통일은 평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한국교회도 할 일을 찾아보자. 통일을 목표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분단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고 '평화'의 우월성을 견지해야 한다. 평화의 복음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과 증오, 그리고 분단의 폭력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방편이 된다. 한국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이끌 로컬 오너십이다. 남은 것은 평화를 통한 통일을 최종상태로 한 '평화'의 실천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국가는 분명히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교회는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준칙을 따르는 것이 복음의 원리에 부합한다. 교회는 국가와는 차별화된 행위자로 '인도주의'에 기초해 남북한 평화를 구축하는 기획에 집중해야 한다. 교회는 남북한 평화를 만드는 일에 사람과 예산,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자!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 신냉전 2.0이 도래하는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남북한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교회가 평화의 상상력을 포기하는 순간 전쟁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이 한반도를 장악할지도 모를 일이다. 평화를 통한 통일 이외에 대안은 없다. 한국교회형 평화프로세스를 브랜드화하여 '평화'통일의 돌파구를 여는 일,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의미일 것이다.



유영식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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