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질문, 영화로 답하다

삶에 대한 질문, 영화로 답하다

[ 아름다운세상 ] 20주년 맞은 파이오니아21연구소와 소장 김상철 목사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2년 07월 26일(화) 17:04
파이오니아21연구소 소장, 한국기독교영화제 공동위원장, 베델회복공동체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영화 제작 및 기독교 영화인 양성, 중독극복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김상철 목사.
영화 '부활:그 증거' 촬영 당시 로마에서 함께한 배우 권오중 씨, 이용규 선교사, 2011년 미스코리아 이성혜 씨, 김상철 목사(좌로부터).
영화 '가나안 김용기'의 배우와 스태프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파이오니아21연구소 내부. 연구소의 주된 사역은 중독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무료 상담이다.
10년 이상 중독 치유사역을 펼쳐 온 김상철 목사의 저서들.
중독(addiction), 우울증,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상담기관으로 잘 알려진 '파이오니아21연구소'(소장:김상철)가 이번 달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설립 초기 연구소는 인터넷과 영상을 이용한 전도전략 연구에 집중했다. 전도에 초점을 맞춘 웹사이트 개발과 교역자들의 멀티미디어 활용을 돕는 사역이었다. 그러다 2009년 다큐멘터리 '잊혀진 가방'을 기획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선교에 뛰어든다. 2000년대 초반 영상선교를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2010년대 영화선교에 뛰어들 때도 연구소는 그 이름처럼 '개척자(pioneer)'의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파이오니아21연구소는 '영화 제작 및 한국기독교영화제(KCFF) 중심의 영화선교'와 '베델회복공동체를 통한 중독회복사역'을 정착시키며, 기독교 가치로 사람들을 변화시킨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다.

'연구소'라는 명칭이 '영화 제작'과 어울리진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을 시청하고 나면 이들의 연구결과가 영화인 것을 알게 된다.

영화 '잊혀진 가방(2011년)'은 사역지로 떠난 선교사들이 남긴 가방에 대한 이야기다. 호주, 남아공, 우간다, 콩고, 세네갈 등 7개국에서 이어진 촬영은 콩고에서 평생 헌신한 의료선교사 헬렌 로즈비어 여사와 필립과 낸시우드 부부의 삶을 시작으로,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가는 선교사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은 소장 김상철 목사는 연예인 권오중 씨와 이현우 씨의 눈을 통해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분석을 제시한다.

이후 파이오니아21연구소는 '제자 옥한흠(2014년)', '순교(2015)', '중독(2019년)', '부활:그 증거(2020년)', '가나안 김용기(2021년)' 등을 내놓았고, 파이오니아21은 가장 많은 기독교 영화를 제작한 기관이 됐다.

김상철 목사의 영화들은 일관되게 죽음과 부활, 중독과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부활:그 증거'에선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죽음의 경험과 기독교만이 전할 수 있는 부활의 증거를 제시한다. 당시 영화에 출연한 고 이어령 교수는 탄생은 축하하지만 죽음은 감추는 현 시대를 '죽음이 죽은 시대'로 정의했다. 또한 죽음의 의미와 그 후를 안다면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세상적 가치관이 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는 신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인도인들과 로마시대 제자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부활 이후 달라진 제자들의 태도를 부활의 증거로 제시한다. 예수님이 잡혔을 때 흩어졌던 제자들은 부활을 목격한 후에 다른 삶을 살았다. 부활을 부인했던 도마 마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 누구도 '왜 사랑하는 제자에게 고통을 허락하실까?' 궁금해하지 않았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죽음을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무료로 배포돼 5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중독'에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죽음을 택하는 중독자들의 현실을 알리며, '교회가 이들에게 작은 숨구멍을 열어줄 것'을 요청한다. 영화는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무엇을 위한 장소인가?'를 반문하며, '문제가 보일 땐 그 것의 원인이 된 곤란한 상황까지 살피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함'을 조언한다. 김상철 목사를 중독 전문가의 길로 이끈 것은 '잊혀진 가방' 촬영 중에 만난 WEC선교회 전 총재 에반 데이비스였다. '중독이 향후 선교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데이비스의 전망을 처음 들을 때만 해도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사역에 돈, 시간, 삶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 목사는 '한 영혼의 값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깨닫는다. 회복돼도 실수를 반복하고 쉽게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독자들이지만, 그들과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배우게 된다. 영화 '중독' 역시 그가 6개국 10개 도시를 방문하며 중독의 해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김 목사는 자신의 영화 인생이 '구도의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평균 3년이 걸렸고, '중독'의 경우는 제작비 부족으로 자주 촬영이 중단되면서 8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안타깝게도 모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지금도 또 다른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6년 기독교 영화인재 발굴을 위해 시작한 '한국기독교영화제'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다. 지난해부턴 규모를 확대해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기자는 몇 주 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파이오니아21연구소를 방문했다. 영화 제작이라는 역할도 어색하지만 내부는 더 연구소답지 않은 모습이다. 김 목사는 이 곳에서 중독자들을 돕는 '베델회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개소한 공동체는 김 목사의 인생 후반기 사역이다. 저서 4권 중 3권이 중독에 대한 이야기일 정도로 그는 중독 전문가다. 공동체는 육체의 쉼을 제공하고, 영을 회복시키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돕는다. '영혼이 병들면 영혼의 창조자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삶의 주인을 완전히 바꾸는 경험을 갖게 한다.

김 목사는 생각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신을 다해 살아간 영적 거장들의 이야기들을 엮어 영화로 만들었다. 또한 이어령 교수의 "상처가 상흔이 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상처가 아물어 상흔이 되지 않으면 계속 아프고 피가 나는데, 그리스도인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부활의 능력을 온전히 믿어 상처가 상흔으로 바뀌는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젊은 시절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는 본보의 독자들에게 "가족이나 교우들에게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연약한 사람일수록 그 불안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불안감을 주는 잘못된 습관을 경계할 것을 요청했다.

네 자녀의 아버지인 김상철 목사는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는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소망이다. 그 다음은 '예수를 믿는 것은 타인을 돕는 일'이라는 신념이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파이오니아21연구소를 통해 행복과 섬김을 모두 얻은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그 동안 소개했던 다른 사역자들처럼 조용히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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