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들의 필요 채우는 인천 제물포밥집

지역 주민들의 필요 채우는 인천 제물포밥집

[ 아름다운세상 ] 한용걸 신부와 30여 명의 자원봉사자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2년 07월 06일(수) 23:23
코로나19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멀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모든 국민이 불편함을 겪었다.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지인을 만나지 못하고, 예배당에서 찬양할 수도 없고, 결혼식 하객 수도 제한받았다. 야외에서 자유롭게 모이지 못하거나, 음식을 나누지도 못했다. 대부분에겐 사소한 제약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생사를 위협하는 조치였다.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짝하고 금세 사라질 듯했다. 그러나 장기화되면서 사회의 취약계층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노인들은 경로당과 복지관에서 이전처럼 모이지 못해 고립됐다. 학교 등교가 중지돼 조손 가정에선 아이들에게 식사를 챙겨줘야 했다. 홀몸 노인과 노숙인들이 의지하던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았다.

우리 사회 이웃들이 끼니를 챙기지 못하자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사)함께걷는길벗회 이사장인 한용걸 신부(대한성공회)를 중심으로 봉사자들은 2020년 9월부터 지하철역 주변에서 주먹밥을 나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에 '제물포밥집'을 열고, 본격적으로 밥을 지어 나누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더욱 소외된 이웃을 위해 제물포밥집은 2년 가까이 식사를 나눠왔다. 매주 금토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배급 방식은 '무제한-테이크아웃(Take-out)'이다. 한 사람이 앉아 식사하면 20분이 걸리지만, 작은 제물포밥집은 3시간 동안 주민들에게 원하는 만큼 밥과 국, 간식을 쉴 새 없이 퍼준다.

주민들은 제물포밥집 앞에 줄지어 선다. 손에는 집에서 가져온 여러 개의 다회용기, 그리고 텀블러를 들고 있다. 비닐봉지나 일회용기를 가져왔다면 제물포밥집이 따로 다회용기를 챙겨준다. 주민들이 들고 온 용기의 크기와 개수에 상관없이 모두 밥과 국으로 가득 채워준다. 밥집을 방문하는 주민은 하루 평균 200명이지만, 실제로 500인분 이상을 나눈다.

"제물포밥집을 방문하는 주민들은 다회용기를 평균 3개 정도 들고 와요. 필요한 만큼 가져오시는 거예요. 금·토·일 3일 동안 가득 받아 가면 일주일 식사가 해결돼요. 멀리서 전철 타고 오시는 분들도 계신데, 딸랑 도시락 하나만 드릴 수는 없잖아요."
- 한용걸 신부



지난 6월 24일 금요일 오전 10시. 제물포밥집 앞엔 주민 30여 명이 음식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 오후 1시가 되기까지 이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제물포밥집엔 밥 짓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날 메뉴는 소고기가 들어간 시래기국이었다. 밥과 국, 요구르트와 초코파이, 그리고 모기기피제와 마스크 등도 제공됐다.

기다리는 주민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맡은 자리에서 종처럼 충실하게 헌신했다. 3시간 동안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한 몸, 지체의 각 부분처럼 움직였다. 가장 앞에 선 봉사자는 주민과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용기를 안쪽으로 건넸다. 밥집 내부에선 한 명이 밥을 푸고, 다른 한 명이 국을 떴다. 그 뒤에선 밥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형밥솥 5개로 밥을 짓고, 다른 봉사자들은 부엌일을 했다.

식사를 양껏 받은 한 주민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깥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한용걸 신부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대표님이 배고픈 사람을 위해 밥을 주시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다른 주민은 마실 거리를 가져왔다. "신부님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식혜 한 병 가져다 줄게!" 한용걸 신부는 방문하는 모든 주민을 유심히 보며 안부를 묻고, 건강과 컨디션을 체크했다.

밥을 받고 돌아가는 한 어르신은 봉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높고 낮음이 없는 모습이었다. 준다고 생색내지 않고, 받으며 눈치 보지 않는 그런 관계. 봉사자는 그저 그들이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 밥과 국을 떠줬다. 금·토·일 교대로 나오는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종교도 다르고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한 가지 같은 이유로 이곳에 나왔다. 이웃의 필요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가 있는 곳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노숙인과 노인에게 오신 하나님, 그 요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자, 성도 됨의 도리입니다. 여기 모인 봉사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입장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정량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섯 통이든 여섯 통이든 그들이 원하는 만큼 다 줍니다. 우리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니까요."
- 한용걸 신부


제물포밥집이 하루에 소비하는 쌀은 80kg. 그럼에도 밥집에 쌀이 바닥나는 경우는 없었다. 창고에 쌀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찼다. 지난주 금요일엔 쌀이 2주일 분량만 남았었는데 60포대가 들어왔다. 저번주엔 계란 1만 1500개가 도착했고, 어제는 요구르트 1200개가 왔다. 곳간에 쌓지 않고 퍼주니, 그만큼 다시 들어오는 이 순환이 신기하기만 했다. 제물포밥집이 사랑과 축복의 통로처럼 보였다. 자원봉사자와 주민의 대등한 관계처럼, 전국의 후원자와 밥집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물자가 떨어지지 않아요. 보낸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해요. 거꾸로 된 것 아니에요? 보통 받은 사람이 고마우니까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후원자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겠대요.
그런데 이게 맞아요. 우리는 나누고, 그들은 쌀독을 채우는 것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주민들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동안 국가와 자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셨으니 이제 받아야죠. 우리는 열심히 돈 벌어서 이분들과 나눠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 한용걸 신부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한 제물포밥집은 코로나와 함께 사라진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닐 때가 오면, 다른 곳에서 이들의 식사를 다시 챙겨준다면, 제물포밥집은 기쁜 마음으로 해산한다. 제물포밥집 대표 한용걸 신부는 자원봉사자들과의 역할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봉사자는 재난이 닥친 상황까지 활동하고,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일은 국가나 규모 있는 교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 아픈 일화를 소개하며, 지역주민에 대한 관심을 한국교회에 요청했다.

"과거에 보건소 간호사 전화를 받고, 모르는 단칸방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쓰레기가 창문까지 쌓여 있었어요. 그 방에 혼자 누워 계신 분을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가슴을 갈랐는데 안에 고름이 가득 차 있었어요. 결핵 말기였죠. 병원에서 손을 못 쓴다고 해서 다시 꿰매고 왔어요. 그날 그분은 돌아가셨고, 그분 아들과 둘이서 월미도에 가 뼛가루를 뿌렸어요.
그런데 그 단칸방 위치가 한 대형교회 담벼락 바로 밑이에요. 수천 명의 성도가 모여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외치는데, 그 밑에서 어린 양이 죽어가고 있던 거예요."
한용걸 신부.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가 나서주세요. 장애아동 노인 노숙인 조손가정 등을 보살펴주세요. 하나님께 봉헌한 예배당은 주님의 불쌍한 어린 양들, 그 동네 이웃들도 이용해야죠. 하나님나라는 어디에나 같으니까 섹터를 가르지 말아주세요. 그 많은 교회가 한 숟가락씩만 푸면, 이 가난한 사람들 다 먹일 수 있어요. 목사님들, 다 아시잖아요.(웃음)"
- 한용걸 신부




최샘찬 기자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머리에 두건이나 모자를 쓴 봉사자들은 2~3급 장애를 가진 봉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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