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색소폰과 친구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색소폰과 친구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 아름다운세상 ] 발달장애인 색소폰 연주자 임은규 씨와 스승 박수용 교수가 피워낸 '아름다운 열매'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5월 03일(화) 16:01
【 광주=최은숙 기자】나에게 색소폰이란? "가슴 깊이 박혀 있는 응어리를 벗겨내게 해주는 거요!"

색소폰 연주자 임은규 씨는 그래서 색소폰이 좋았나 보다.

은규 씨는 3급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은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자기 절제 능력이나 사회성이 부족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은규 씨에게 '사회적 약속'들은 참아내기 힘든 시간이고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사탕을 좋아하는데… 콜라도 좋아하는 데… 자꾸 못먹게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걸 잘 못하게 해서 답답한데 색소폰을 불면 기분 나쁜게 다 풀려요."

색소폰을 연주할 때 은규 씨는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던 공감과 배려, 이해와 존중을 받았다고 느꼈을까. 아마도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하다'는 색소폰의 따스함이 은규 씨에게 '선'을 넘어서도 불편하지 않는 유일한 해방구였을지도 모른다.

지난 4월의 끝무렵 호남신학대학교(총장:최흥진) 음악대학에서 색소포니스트 박수용 교수(학과장)와 그의 제자 은규 씨를 만났다.

국내 정상급 재즈 뮤지션인 박수용 교수는 '발달장애를 이겨낸' 색소폰 연주자 은규 씨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저한테는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은규 씨는 "제가 색소폰과 친구가 될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서투른 진심을 전했다.

색소폰 소리가 좋아서 버스킹을 하는 교회 집사님들을 따라 다니다가 "색소폰이 좋다"는 아들의 한 마디에 아버지 임병진 집사는 박수용 교수를 찾아갔다.

임 집사는 "당시 교수님께서 10년 동안 뉴욕에서 활동하시다가 학교로 오신지 얼마 되지 안됐을 때였다"면서 "부족한 아이를 맡아달라고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아픔이 있는 아이를 따뜻하게 교육해주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임 집사는 "교수님 없이 연주자 인규는 없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2009년, 중학생인 은규 씨를 처음 만났다. 재즈 색소폰은 틀에 박힌 선율보다 역동적인 즉흥 연주로 관객과의 소통하는 악기다. 연주자의 창의성과 개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지력이 덜 발달된 지적장애인에게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 은규 씨는 몸이 불편해서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집중력을 오래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은규 씨의 '자립'을 돕고 싶었다. 은규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색소폰의 마우스피스도 거꾸로 물고 있을 정도로 기초가 전혀 없었다. 힘든 시간임이 분명했지만 제자의 '홀로서기'를 돕고 싶었다. 스승은 기꺼이 성실한 연습 상대를 자처해 1시간이면 1시간, 4시간이면 4시간 혹은 그 이상까지 제자와 연주하며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높일 수 있게 격려했다. 결국 중학생 은규 씨는 성장을 거듭했고 호남신대 음악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누구보다 '잘'해냈다.

콩쿨 수상도 다양하다. 제25회 전국학생 음악경연대회 3위, 제1회 대한민국 아마추어 색소폰 콩쿨 최우수상, CBS실용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했고 지난 2021년 충남도지사 배 온택트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버스킹을 쫓아다니며 사탕을 먹던 어린 은규는 이제 없다. 교회에서 매주 특송도 하고 다양하게 방송 출연도 한다. 연말연시 각종 후원행사에 초청돼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전문 연주자로 성장했다.

은규 씨는 대학 졸업 후 같은 대학 교회음악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밟던 중 장애 합병증으로 시력이 저하되고 몸에 여러 이상 증세가 생기면서 잠시 휴학 중이다. 그럼에도 그는 색소폰을 놓지 않는다. 여전히 사단법인 선율 소속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고 병원, 고아원, 특수학교 등을 찾아가 연주한다.

그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 밴드를 만들어서 찾아가는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암 병동이나 고아원, 특수학교 같은 곳에서 콘서트 하고 싶어요".

남들보다 조금 더디지만 조금 씩 꿈을 향해 가는 은규 씨와 그의 옆에서 제자를 응원하는 스승 박수용 교수. 제자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며 "장애인은 안된다"는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없이 제자의 손을 잡아준 스승은 "은규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는 안다. 제자가 걸어갈 그 창창한 길이 '꽃길'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은규가 장애를 이겨내고,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활동할 수 있는 전문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세요".

아픔이 있는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소박하지만 깊은 응원의 메시지가 중후한 색소폰의 울림보다 더 깊게 다가온다. 봄 빛은 따뜻했고 스승과 제자의 시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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