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보다 중요한 것

'속도' 보다 중요한 것

[ 기자수첩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2년 04월 19일(화) 16:24
"긴급구호의 생명은 속도"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긴급상황에서의 빠른 대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구호에 있어서 '속도'는 때론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구호단체들이 다수 생기면서 '속도'는 그 단체의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사고의 현장에서 각 단체들은 구호 속도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속도'가 빠르면 매체의 주목을 받고, 매체에 노출이 되면 구호금이나 후원금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쟁을 벌인다기 보다는 경쟁에 내몰린다는 표현도 틀리지 않은 말이다. 모금을 실시해 구호단체로 지원을 하는 단체나 기관들도 후원자들로부터 '속도'에 대한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한국교회도 국내적으로는 동해안 산불 구호와 국외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구호로 바쁜 모양새다. 모두 다 피해자가 많은 상황이라 지원단체도 구호단체도 '속도'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2~8일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과 현지 지원 사역을 점검하기 위해 체코와 헝가리 등을 방문한 한국교회봉사단 실사단에 동행한 교단 총회 사무총장은 현장의 상황을 살펴보고 구호에 있어 속도보다 효과에 집중해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EU와 유럽 구호단체들의 지원이 많아 물자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넘치는 구호물자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곳마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지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예장 총회를 비롯한 한국교회는 먹을 것이 없어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다는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의 재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례적인 규모의 모금을 진행했으나 결국 최종 평가에 있어서는 긍정적이지 못했었다. 기자도 당시 현장 취재로 현장을 방문했을 때 워낙 열악한 상황과 후진적인 행정구조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구호금과 물품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측은지심의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재난 구호 현장이다.

동해안 산불 구호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한국교회의 구호가 피해 현장의 필요와 요구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칫 잘못하면 피해자를 위해 구호단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호단체의 존립이나 수혜자의 심리적 위안이나 만족을 위해 피해자가 필요해지는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재해구호에 있어 속도가 다소 늦어지는 일이 있어도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꼭 필요한 적재적소의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한국교회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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