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개혁과 회중으로서의 장애인"

"목회 개혁과 회중으로서의 장애인"

[ 4월 특집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4. 목회 활동과 장애인

안교성 교수
2022년 04월 20일(수) 14:23
안교성 교수
무엇을 바란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더구나 그 바람이 이뤄지기 쉽지 않을 경우, 어려움은 더욱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고 지키고 이뤄나가야 할 바람이 있다. 장애인이 장애 없는 교회 생활, 장애 없는 시민 생활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바람이 과연 어림없는 바람이고 뜬금없는 바람이요 부질없는 바람일까? 무릇 소중한 바람은 대기만성인 법. 그래서 귀한 바람은 믿음에 기초하고, 사랑으로 유지하며, 소망으로 다짐해가야 한다.

다행스럽게 우리 교단은 한국교회 중에서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 그나마 선두주자인 셈이다. 관련 연구, 문건 작성, 정책 수립, 제안 실행 등 여러모로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령 2020년 제105회 총회에서 2021년부터 총회 산하 노회원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의했고, 이에 따라 '교회와 장애인식 개선'이라는 책도 냈다. 이 운동은 노회 차원은 물론이고 지교회 차원에서도 시행되어야 한다. 자매교단인 호주연합교회(UCA) 처럼 대회(Synod)마다 장애인 전담 목회자를 두지 못한다면, 노회 내 장애인 목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를 전문가로 위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세 번에 걸쳐 장애인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이제 목회와 장애인을 살펴볼 차례이다. 첫째, 목회는 목민(牧民)이다. 성경은 목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특히 전통적인 목회론에서 목자는 성직자와 동일시되고, 따라서 목사가 목회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목사의 개혁 없이 목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목사의 개혁은 소명, 신학교육, 청빙 등 전반에 걸쳐서 이뤄져야 한다.

먼저 목사는 회중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 받는 존재인데, 장애인이 회중의 일부라는 점을 소명 단계에서부터 인식해야 한다. 장애인 문제는 목사에게 있어서 결코 '강 건너 불' 식의 남의 일이 아니다. 또한 목사 양성 기관인 신학교도 교과과정에 장애인 주제를 포함해, 적어도 신학생이 졸업할 때는 장애인 목회 역량을 갖추고 장애인 문제를 염두에 둔 목회 비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 신학교육의 현실은 실망스럽다. 끝으로 장애인 목회자나 장애인 사역을 꿈꾸는 목회자에게 청빙의 기회가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교회는 장애인 목회자를 지원하는 경우는 있지만 청빙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청빙 받지 않고서, 신참 목회자가 어디서 훈련받고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 사실 장애인 목회자의 사역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일반교회에서 사역할 경우, 일반목회는 물론이고 교회의 장애인식 개선에 기여하거나 장애인 부서를 운영하거나 장애인 사역을 위한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물론 장애인 교회나 장애인 단체 같은 특수목회도 중요하지만, 이런 특수목회는 일반교회와의 연대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둘째, 목회는 애민(愛民)이다. 정약용은 그의 '목민심서' 12편 가운데 애민을 포함했다. 그의 가톨릭 신앙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하튼 공직의 핵심을 짚어낸 대목인데, 기독교 목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인데, 막상 교회 현장을 보면 그런 본질과 동떨어진 의식과 행태를 쉽게 목격하게 된다. 교회마저 각자도생의 살벌한 각축장으로 전락해 실리를 따지는 현실에서 과연 장애인 문제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청빙과 관련해, 호주에서 현지인 교회와 한인 교회가 통합된 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친구 목사는 현지인 교회가 통합 이전에 암에 걸린 신학교 졸업생을 청빙한 적이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지인 장로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대답인즉 다음과 같았다. 이 여성 목회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다가 소명을 받고 신학 공부를 하던 중, 그만 암에 걸렸다. 암과 투병하면서 겨우 신학 공부를 마쳤는데, 아무도 청빙을 하지 않아 목사 안수도 받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지인 교회가 그 목회자와 면담했을 때, 1~2년은 사역이 가능하다고 해서 청빙했다. 그러나 부임 후 3개월 만에 암이 재발했고 5개월간 투병하다가 결국 생을 마쳤다. 친구 목사는 불리한 조건을 지닌 목회자를 굳이 청빙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이런 답을 들었다. "소명 받아 목사가 되려는 분을 목사가 되어 천국 가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목회하려고 준비한 사람에게 적어도 목회의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과연 교회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고 자랑거리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데, 이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 양상을 보면서, 인간이란 참으로 무심하고 무정하고 무책임할 수 있는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가? 과연 교회는 이들을 책망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교회마저 장애인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면, 장애인들은 대체 어디에다가 마음을 붙일 수 있을런지.

셋째, 목회는 재민(在民)이다. 새로운 목회론에 의하면, 회중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즉 회중은 더이상 목회의 대상이 아니라, 목회의 동역자요 나아가 목회의 주체이다. 따라서 목회는 목회자가 회중에 대해 자신의 목회 비전을 일방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회중의 공동 비전을 함께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차원을 넘어서, 회중의 일부를 구성하는 장애인이 해당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회중의 공동 비전을 함께 빚어가며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은 회중의 일부로서, 교회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동역자요 주체이다. 이제는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의견제시에 있어서 상식이 된 구호,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한 것도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가 교회론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즉 교회의 패러다임이 장애인을 위한 교회에서 장애인의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장애인은 교회의 장애인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당사자요 주체이다.

안교성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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