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교회인가?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교회인가?

[ 4월특집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1)교회에서 장애인 인식개선

이계윤 목사
2022년 03월 30일(수) 19:27
2020년 제 105회 총회에서 '전국 노회원 대상 노회별 장애인식교육 연1회 정기실시'가 채택됐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교회와 장애인식개선"이란 책도 출간하였다.

지체중증 장애인인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 수련회에 참석한 기억이 한 번도 없다. 게다가 "같이 가자"고 내민 손길을 경험하지 못했다. 교회의 활동에 지체장애인으로서 참여하는 일에 환영받지 못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와는 반대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이같이 말했다. "계윤아. 내가 너를 업고라도 다닐테니까 수학여행에 같이 가자." 장애인이 참여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교회와 반드시 같이 가자고 채근했던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고 있다.

"장애인 없는교회(a church without person with disabliities))는 장애된 교회(disabled church)이다." "지금 설교하실 때 장애에 대하여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기본적인 활동인 예배, 교육, 전도, 봉사, 교제에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습니까?" "목회현장에 장애인 목회자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는 이러한 주장과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성서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장애(disability)는 손상(impairment) 혹은 신체적/정신적 약함(weakness)을 소유한 사람이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배제 혹은 차별하는 환경적 장벽으로 인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서에서도 '약함/손상'과 '장애'를 구분하고 있다. 출4:11에서 하나님은 "언어능력, 청력, 시력, 이동능력이 약한 자"를 만드신 분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약함을 가진 모세를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을 위하여 부름받은 사람으로 사용하신다. 고후12:9.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한다. 신구약의 두 말씀은 약함 자체가 불능(disability)이거나 무능(inability)의 증표가 아님을 공통적으로 정의한다.

또한 히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Make level paths for your feet, so that the lame may not be disabled, but rather healed./NIV)" 이 말씀의 영어표현을 보면 다리를 저는 자 즉 이동능력에 약함을 가진 자가 장애인(the disabled)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레위기는 손상입은 자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고 레위기 19:14에서 구체적으로 명령하신다. 이와 반대로 장애물을 제거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욥이다. 욥29: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구약의 이 말씀은 약함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구성원의 하나가 되고, 활동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일에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함을 가르친다.

완전한 건강함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약함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비롯하여 사회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가시적인 약함을 장애로 만들었다. 아울러 소극적인 관점으로는 이 약함 자체를 죄의 결과, 저주나 불신앙으로 인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관점으로는 예배당이나 교회 직제나 활동에 약한 사람이 참여할 수 없도록 환경적인 장벽(barrier), 배제나 소외 등의 부정적 접근, '소경, 귀머거리, 문둥병 등' 부정적인 표현을 통하여 상처를 주거나 장애인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한세인 등의 용어가 존재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롬3:22, 10:12, 약3:1, 골3;11에서 "차별이 없는 교회"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만난 38년 된 장애인,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서 만난 장애인, 그리고 숱한 시각, 청각 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떤 심정이셨을까?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 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라고 말하는 제자들의 질문 앞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예수님 스스로 "장애를 입은 몸을 선택한 사건(Cox Jennifer Anne:2017)"이다.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한하고 무능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회적/종교적/정치적으로 더 나아가 가족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을 찾아가서 만날 때, 비장애인의 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셨다. 그리도 그들을 변화시키셨다. 단지 몸의 변화가 목적이 아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성서는 일관성 있게 가르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이다." 우리는 약함을 가지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 약하기에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야" 하나의 몸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교회이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모든 믿는 자는 교회 공동체의 활동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계윤 목사 /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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