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복음으로서 피조물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복음으로서 피조물

[ 3월특집 ] 이 땅에서 보호 받아야 할 것들 4)보호되어야 할 피조물(창조세계 보존)

최광선 목사
2022년 03월 23일(수) 11:21
총회 앞마당 잔디밭에 북극곰과 펭귄이 놓여있다. 왜 북극에 있어야 할 북극곰과 남극 펭귄이 총회 앞마당까지 왔을까? 기후위기로 터전을 잃고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북극곰과 펭귄은 이 시대의 위험을 경고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다. 전쟁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시인과 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이 비유는 그가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잠수함에서 근무했던 경험에서 가져왔다. 당시 잠수함에는 산소측정기가 없어, 병사들은 잠수함의 산소농도를 점검하기 위해 산소에 민감한 토끼를 태웠다. 잠수함에 산소 이상이 생기면 토끼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을 보고 선원들은 위험을 감지했기에 잠수함 속의 토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북극곰과 펭귄은 지구공동체의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총회 앞마당에 세워졌다.

2010년 유엔 식물다양성협약보고서에 따르면 1970~2006년 사이 지구 생물 종의 31%가 사라졌다. 위 보고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68%의 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양서류 41%, 무척추동물 30%, 포유류 25%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타계한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연간 만종 이상의 생명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고,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 교수는 지구는 이미 여섯 번째 대멸종에 접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후위기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북극곰과 펭귄이 처한 멸종위기의 현실은 암울하게도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기후위기와 대량멸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캐나다 한 영성센터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동안 성경과 창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과 은혜를 깊이 맛보았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제와 사귐을 맛보았다. 또한, 그곳의 들녘, 강, 숲, 나무, 하늘, 바람, 구름, 거북이, 흔들리는 들풀과 꽃, 새벽 들녘의 주인공인 사슴들, 코요테와 토끼, 소와 밭의 채소와 곡식들, 밟고 있는 땅과 돌멩이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외쳤고, 하나님의 장엄함을 드러내는 거룩한 복음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창조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바라보게 하였고, 기후위기를 아파하며 바라보는 생태적 시각을 제공하였다.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킨 멸종은 하나님의 현존을 지워버리는 행위요, 하나님의 장엄한 복음을 찢어버리는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인류가 저지른 끔찍한 파괴행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북극곰의 멸종은 지구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태의 원칙은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멸종으로 사라지는 북극곰의 미래는 자명하게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생태사상가 토마스 베리의 말처럼, 건강한 지구 없이 건강한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 건강한 지구 없이 건강한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지구가 건강해야 한다. 인간이 건강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구가 건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첫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 길을 물어야 한다. 어느 시대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진지하게 따르는 이들이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생명이 대량 멸종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우리가 직면한 생명의 대멸종과 기후위기에 응답할 수 없는 예수라면, 우리는 그 예수께 진지할 수 없다. 그런 예수는 더 이상 참된 예수가 아니다. 그는 당신의 자폐성 안에 감춰져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창조세계와 소통하지 못한 예수, 닫힌 예수, 죽은 예수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 앞에 여전히 길이 되는 예수, 뭇 사라져가는 생명 종들의 생명이 되는 예수, 어두운 눈 밝히 뜨게 하는 진리의 예수가 우리들의 예수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후위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의 예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기꺼이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성경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길잡이가 되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어떤 신학자나 사상가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성경을 생태적으로 읽고, 그 안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의 샘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그리스도교가 생태위기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이유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신학적 오염과 인간중심적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우리가 가야 할 길에 지혜의 등불과 생명의 빛이 될 것이다.

셋째,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피조물을 대하는 관계를 새롭게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긴급한 영성훈련은 피조물과 주체적 친교를 맺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사람과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위한 구원선이요,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과 모든 생명체와 맺는 영원한 돌봄의 계약이다. 땅과 땅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언약의 주체요, 하나님 약속의 증언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원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피조세계를 거룩한 복음으로 고백하였다. 피조물은 인간이 함부로 짓밟고 파괴해도 되는 객체나 대상이 아니다. 교회는 피조물이 하나님 언약의 주체임을 기억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노아의 방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정원사가 있는 곳에 정원이 있다"는 시구가 있다. 아담은 뭇 생명 종을 파괴하고 멸종에 이르는 막강한 파괴자가 아닌, 하나님의 정원을 가꾸고 돌보는 정원사로 부름을 받았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정원사(동산지기)로 알아차렸다. 예수는 하나님의 집의 정원사이며,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정원사로 부름을 받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정원사로 생명을 향하여 함께 길을 나서야 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돌보고 보살피며,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 위대한 과업을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있다.

최광선 목사 / 덕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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