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안정 유지할 수 있는 평화 세계 소망

삶의 안정 유지할 수 있는 평화 세계 소망

[ 3월특집 ] 이 땅에서 보호 받아야 할 것들 2.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김영식 목사
2022년 03월 10일(목) 17:21
김영식 목사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전쟁을 일으킴으로 유럽의 불안한 평화는 깨지고 말았다. 한국 외대 우크라이나어 학과 교수로 일하며 한국에서 22년째 거주하고 있는 올레나 쉐겔(41)은 전쟁 발발 하루 만에 인터넷 방송에 나와 울먹이는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도 키이우 Kyiv (키예프 Kiev) 국회의사당 옆에 저희 집이 있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과 두 돌도 안 된 조카가 살고 있어요. 키이우가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주변 외곽지역으로 피신을 가셨는데, 공습경보가 울리면 어린 조카를 데리고 지하 대피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하루종일 잠도 못 자고 반복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지만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너무 일찍 우리를 죽이지 마세요. 묻어버리지 마세요. 아직 안 죽었어요, 우리는. 끝까지 버틸 거에요. 끝까지 지킬 거에요." 40대 중년 여성의 호소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 깊은 울림을 남기며 전쟁의 참상을 떠올려주기에 충분했다.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구중궁궐 권력의 한복판에서 지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이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전쟁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을 바라보는 것은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가리우는 것 뿐이다.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해서 6년간 베트남 전쟁 최전선에서 싸워 승리했던 바오닌이 쓴 <전쟁의 슬픔>이라는 소설에서 저자는 정치권력에 속아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쓰러뜨리며 서로를 적대시하고 살육을 저지른 것이 전쟁이라고 말했다. 베트남해방전쟁의 승리자와 영웅이라는 칭호를 거부한 바오닌은 모든 전쟁의 패배자는 민간인이고 승리자는 제국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는 정치적 환호와 자부심은 전쟁이 남긴 깊은 슬픔, 그 어느 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은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자의 관점이 아니다. 전쟁의 현장에서 전쟁의 폭압과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민간인, 사회적 약자, 권력에서 주변화 되어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 여성, 장애인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아야 전쟁의 슬픔과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스스로를 지켜낼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쟁은 그 자체로 파멸이고 폭력이고 진멸이다. 전쟁의 본질은 국제정치적 지정학적 권력 갈등이 아니다. 전쟁은 폭력이다. 2월 27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마리우폴에 미사일 공격으로 핑크색 유니콘 파자마를 입은 소녀가 동네 슈퍼마켓을 가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폴리나는 수도 키이우를 탈출하다가 사보타주(비밀 파괴공작) 단체의 공격을 받아 부모와 함께 사망했다. 27일까지 어린이 16명이 죽고, 45명이 부상당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생명이 파탄 나는 전쟁의 현장에서 전쟁의 승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경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는 사상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우선적 관심과 배려(preferential option)이다(신24:17-22). 심지어 그 사회의 정의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처우로 평가되고 있다(신10:18). 사회적 약자들이 그 사회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삶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평화는 정의를 통해 실현된다. 하나님이 이루실 장래의 평화에 대해 미가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니리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미4:4). 평화는 각 사람의 삶의 생존의 토대가 안전하게 확보되고 보장되는 상태이다. 자신과 가족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제공되고, 그 어떤 생의 위험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평화이다. 따라서 평화는 단순히 국가 간의 권력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전쟁 상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지 않고 항구적 여일성이 지속적으로 보장받는 상태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그 사회가 평화로운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공정성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불공정은 그 사회의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권력의 힘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공정은 그 사회 약자들이 느끼는 삶의 안정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 어린이, 장애인, 여성들이 그 사회의 재화 분배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그 사회에서 얼마나 안정감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가 그 사회 공정성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각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같은 삶의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그 어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평화로운 세계를 소망한다. 특별히 어린이와 여성, 장애인들이 우선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공공 정책과 사회 안전망이 중단 없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전쟁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악이다. 전쟁은 그 어떤 논리와 명분, 의미 부여로도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로 70년을 넘게 한반도 분단의 슬픔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오닌은 이렇게 충고한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수 없다"


김영식 목사/낮은예수마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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