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은 ‘끼리 사랑’이 아니다"

"‘서로 사랑’은 ‘끼리 사랑’이 아니다"

[ 3월특집 ] 1."성경이 말하는 관심과 배려 대상"

장흥길 교수
2022년 03월 01일(화) 10:06
장흥길 교수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다양한 양극화로 인하여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게 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의 문제이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의 시대 상황과 대선 정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삶이 예전보다 더 팍팍해지고 사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 시대적, 사회적 피로도가 누적되어,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이런 현실 상황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은 교회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사회적 불공정과 불평등을 유발하는 제반 영역과 요인에 대한 관심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3월 특집 주제 "이 땅에서 보호받아야 할 것"의 첫 주제로, "성경이 말하는 관심과 배려 대상"을 살펴보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 주제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인간관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이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것도, 인간은 피조물과 함께 창조된 피조 세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이른바 '문화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특별한 피조물(창 1:26~28)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낙원에서 쫓겨난 죄인(창 3장)이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자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롬 5:6~11; 갈 3:26)가 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가 마지막 때 생명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다(계 22:1~5). 이는 성경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간추린 신학적 인간론이며 복음적 인간관이다.

'복음'의 빛 아래서 인간을 이해하는 복음과 인간의 관계에서, '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개방성'과 '보편성'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복음의 내용이 되신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받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하나님의 구원 메시지다(롬 10;13). 그러므로 이 복음을 받은 사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갈 3:28).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 복음 안에서 하나라는 점이 바로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해야 하며, 또한 자신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성경적 근거이며 이유다. 불공정은 차별적인 불평등을 낳는다. 차별은 인간의 비교 우위에서 생겨난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복음의 개방성과 보편성을 외면하고 남을 차별한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차별을 받는다. 비교우위에 있어 상대를 차별하는 사람은 자신과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인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겨 대상화하거나, 때로는 상대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믿음의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거나 지배하려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할 성도가 버려야 할 '자기 의'에서 나온 '자기 확신'과 '자랑'과 '지배욕'에서 비롯된다(막 10:31).

성경이 말하는 주요 관심과 배려 대상은 '사회적 약자'이다. 이는, 구약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객과 고아와 과부'이며, 신약에서는 '세리와 창녀'로 상징되는, 사회에서 소외 받는 모든 종류의 약자들이다. 이들에는 여인과 아이와 종, 가난한 자, 이방인, 장애인, 병자 등까지 온갖 약자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성경에서 천국시민의 관심과 배려 대상은 '사회적 약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과 배려의 대상이다. 그것은 천국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과 자세가 주님과 동행하며 서로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관심과 배려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포함한다. 요즈음 기업 경영에서 강조되는 'ESG' 경영 정신, 곧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중 그 첫째가 '환경', 곧 인간을 둘러싼 '피조세계'이다. 이 피조세계는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해방됨을 고대하고 있다(롬 8:19~22). 이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보호 내지는 관심과 배려의 대상은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며, 또한 '인간'뿐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세계', '만물', 곧 '환경'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관심과 배려의 대상' 문제에서 요점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객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섬기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는 '주체'의 문제이다. 이는 예수의 '이웃 사랑'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눅 10:25~37 단락은 예수께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를 묻는 율법교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를 되묻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바른 이웃 사랑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보호 대상'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과 '피조세계'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인식이며, 자신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의 출발점은 자신 외에 모든 사람이 '이웃'이라는 '복음적 이웃 의식'이며, 이웃을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는 '복음적 자기 인식'과 '주체'의 문제이다. 홀로 존재하고 홀로 사는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 참된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신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 인간은 그 사람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무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人間)이라 함은 '사람 인(人)', '사이 간(間)'이 합쳐진 말로 '사이존재'로서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공생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하나님이 근원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용이 되는 복음의 관점에서 복음적 '이웃 의식', '공생 의식', '동행 의식'을 갖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받는 모든 피조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복음적 동행과 섬김 의식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믿음과 삶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한갓 '그들만의 잔치'로 보일 것이다. 오늘날 홀로 외롭게 살아가다 지쳐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의 눈에는 더욱 그렇게 보일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은 결코 '끼리 사랑'이 아니다.

장흥길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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