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티튜드(attitude)'

'애티튜드(attitude)'

[ 현장칼럼 ]

김용구 목사
2022년 02월 18일(금) 00:10
김용구(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
필자는 장애인과 노약자 뿐 아니라 빠르고 편리하게 살고자하는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수단인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문명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문명의 이기는 버튼 한 번의 '누름조작'으로 나 스스로는 오를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위치에 나를 올려다 놓는다. 불과 십 수 년 전에 다쳤더라면 방 한구석에 누워 욕창합병증으로 사망했을지도 모를 척수신경손상 마비환자인 필자는 발전된 사회의 재활복지환경에 이처럼 종종 고마움을 느낀다. 2차 세계대전 후 부상 후 치료 과정 중 사망한 사람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신경손상장애와 이동성의 제한과 고립으로 인한 후유증(정신병리, 욕창 등)과의 싸움에서 사망을 하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지금의 이동약자들을 위한 시설에 대한 고마움의 정도는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고마움과는 그 깊이를 달리할 것이다.

코로나19(covid-19)발생 전, 매일 재활을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한 무리의 남녀가 병원 로비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교회에서 병원심방을 온 교인들이란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내게 만일 장애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 무리의 '한 남자'처럼 말끔한 정장을 갖추어 입고 성경을 손에 들고 심방대원 여럿과 병원 로비와 병실을 찾아드는 공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잠시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 '타임머신'을 타고 있을 때, 좀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지나간 한 무리의 사람들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젊은 휠체어 사용 장애인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유는 겨우 손바닥으로 자기 휠체어를 밀 수 있는 사지마비 경수 장애인이 채 내리기도 전에 우르르 올라타는 심방대원 탓에, 타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였고, 그 상황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자 하는 이 젊은 휠체어 사용 경수장애인과 심방대원 사이에 고성과 실랑이가 오간 것이다. 급히 그쪽으로 가서 문을 잡아주고 나름 심방대원과 경수장애인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하여 한바탕 소란을 잠재웠다. 그가 혈기 왕성하고 때론 성미 급한 경수장애인이라서 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일전에는 병원에 환자를 만나러 온 이들이 이 경수 장애인 보다 먼저 우르르 올라타는 바람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 상황이 되어 먼저 탄 그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한다. "계단을 이용하셔도 되는 분은 좀 내려주시고 공간을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느냐?" 아무도 꿈쩍이지 않았으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지없이 문이 닫혔고, 그들의 열린 가방 속 성경책과 그들의 손에 들려있던 전도지는 경수장애인의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하며 그가 내게 남긴 말. "목사님, 교회가 제일 후졌어요" 그날뿐이었길 바란다. 어쩌면 사람들 타고 내리는 복잡한 상황에 그의 요청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전하러 오신 분들에게 마음상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유야 어쨌든 그날 그가 경험한 교회 사람들은 정작 필요한 사람의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애티튜드(attitude)'. 상대를 대하는 자세나 몸가짐을 일컬어 우리는 '애티튜드'라고 한다. 그 출발점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세에 있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나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보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용구 목사 / 총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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