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희망의 다른 이름", 새 희망 꿈꾸는 임불교회

"콩은 희망의 다른 이름", 새 희망 꿈꾸는 임불교회

[ 신년특집 ] 어려움 딛고 일어서 희망 전하는 시골교회 이야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1년 12월 31일(금) 08:26
【거창=표현모 기자】경상남도 거창군 임불면에 위치한 임불교회(이현용 목사 시무). 지리산 골바람이 매섭던 지난 12월 3일 임불교회 이현용 목사 부부와 성도들, 일손을 돕기 위해 모인 인근 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임불교회의 성도들은 80~90대 연령층과 지적장애인 등 13명 정도로 이날 모인 성도들은 대부분 지적 장애인들이었다.

오늘은 메주콩을 삶고 메주를 빚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오늘 작업을 위해 무려 1.5톤이나 되는 양의 콩을 전날 새벽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물에 불린 콩은 온도에 민감해 짧은 시간 안에 상할 수 있어 있어서 작업을 시작했으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이날을 위해 임불교회는 새로운 기계를 들여놓고, 작업장 구조변경까지 마쳐 놓았다.

지난해 서울강남노회 수서교회(황명환 목사 시무)가 시행한 자립대상교회 자립을 위한 1억 지원 수익사업 공모에 '재래식 된장 및 간장 제조 판매'와 관련한 내용으로 응모한 결과 지원대상교회로 선정되어 콩 세척기, 증숙기, 성형기, 숙성실, 스팀보일러, 기름보일러, 작업장 구조변경, 전기 페인트 설비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까지는 교회 마당에서 새벽 5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그야말로 추위에 벌벌 떨면서 '죽을 고생' 끝에 콩을 찌고 메주를 빚었는데 수서교회의 지원으로 제작설비가 완비되어 추운 겨울 바깥에서 떨지 않고 노동의 강도도 줄이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난다.

지난 2014년부터 8년 째 이 작업을 해 온 이현용 목사의 부인 곽유선 씨는 "과거에는 솥 10개를 밖에 걸고 내내 저어주면서 작업을 했는데 팔과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고, 춥기도 엄청 추워서 고생이 많았다"며, "수서교회의 지원 덕분에 이렇게 따뜻한 실내에서 작업을 하니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행복해한다.

그러나 인생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가는 경우가 얼마나 됐던가. 이번에 들여온 자동화 시설로 처음 메주를 만들어보는 탓에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예전 재래식으로 작업했을 때는 불편했지만 작업 중 손이 비는 시간이 없었는데 이 기계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기계로 콩을 찌는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간과했다. 모여 있는 일꾼들은 증숙기에서 콩이 쪄져 나오는 한 시간 가량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생겨 작업 속도가 생각보다 늦어진 것.

토요일 오전까지는 모든 공정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이 정도 속도면 주일, 혹은 월요일까지도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이현용 목사는 걱정이 한 가득이다. 가장 큰 걱정은 온도에 민감한 콩의 맛이 변질되는 것이다.

이 목사가 새로 구입한 기계로 콩을 50분간 삶고 10분간 뜸을 들인 후 열기를 식혀 작업대로 보내면 교인들이 메주를 만든다. 교인들이 마냥 기다리는 시간만 늘자 목사 부부는 마음이 급해진다. 혹시 몰라 아궁이에 예전처럼 솥 4개를 걸어놓길 잘했다며 삶고 있는 콩을 살폈다.

함께 걱정해주고 돕겠다고 찾아와 준 동료 목회자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다. 이날 작업을 위해 지리산선교동지회와 진주노회 거창시찰과 함양시찰에서 동료 목회자들이 찾아와 일손을 도왔다.

3년째 이 작업을 돕고 있는 이윤택 목사(거창우리교회)는 "임불교회는 지체장애인 성도들이 많아 이 교회 교인들끼리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여러 목회자들이 이틀 정도 사역 일정을 빼고 일을 도우러 온다"며, "임불교회의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된장과 간장이 잘 만들어져 팔려야 된다. 단순히 된장, 간장 만드는 걸 돕는 게 아니라 지역의 초고령의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돌보는 중요한 일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말대로 임불교회 목사 부부는 매주일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과 정신지체장애인 교인들을 일일이 차로 이동을 시켜 예배를 드리고, 다시 귀가까지 책임진다.

이날 일손을 도우러 온 이기성 목사(지리산선교동지회 회장)도 한 마디 거든다.

그는 "농어촌교회의 부흥선교 전략으로 스토리가 있는 메주사업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된장 사업을 통해 교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다"라며, "지리산 지역의 교회들이 대부분 어려운데 이현용 목사님을 통해 '어렵다', '안된다'며 주저 앉지 않고 어떻게 하던지 실낱 같은 희망을 발견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몸살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이날 작업으로 임불교회의 된장, 간장 사업 공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삶은 메주콩은 숙성실에서 두 달 반 동안 숙성되고, 2월 초에는 만들어진 메주로 천일염을 풀어 장을 담근다. 그후 또 두 달 반이 지난 4월 초에는 장을 분리한다. 메주는 성형기에 분리해 넣고 거기서 나온 수분은 간장이 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때 만든 간장과 된장은 그 해 11월 초부터 출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바로 다시 콩을 수매하는 시기가 되어 다음 해의 간장, 된장 작업이 바로 시작된다. 중간 중간 포장 작업도 해야 한다. 작업을 하고 기다리고, 또 다른 작업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 마치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키워내는 목회 사역과 닮아 있다.

이현용 목사는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사는 지 아는 분들은 고된 노동으로 몸 상하고 마진도 잘 나지 않는 이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우리의 노동을 통해 콩 농사를 지은 지역 주민들의 판로가 열리고, 임불교회의 사역이 지속될 수 있어 앞으로도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며, "콩이 오랜 시간 우리의 손을 거쳐 발효되어 건강한 식품이 되는 것처럼 2022년에는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임불교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지체장애인 교인들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며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표현모 기자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하나님이 희망을 선물하셨어요"

임불교회 담임 이현용 목사 부부


"사실 최근 원재료 값 상승으로 사업의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사업을 접을 위기였어요. 그때 수서교회에서 자립대상교회 자립을 위한 1억원 지원 수익사업 공모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게 됐죠. 감사하게 공모에 선정되어 수서교회의 지원을 통해 시설을 새롭게 완비하고 새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2014년7월 12일 이곳 임불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해 8번째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드는 작업을 한 이현용 목사와 부인 곽유선 씨는 이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기계 및 시설을 지원해준 수서교회와 일손을 도우러 온 인근 교회 목회자들,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현용 목사는 "1대 목회자께서 35년 전 교회가 없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쓰러져가는 초가를 임대해 임불교회를 시작하셨는데 첫 교회건물을 지을 때부터 지역 주민들의 농산물을 수매하려는 생각으로 1층을 창고로 지었다"며, "저희도 이런 일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전임 목회자들께서 매뉴얼을 너무 잘 작성해 두셔서 그대로 해봤더니 정말 맛 좋은 된장, 간장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9년간 목회와 교회의 사업을 함께 진행하다 보니 피로 누적과 무리한 근육 사용으로 건강은 건강대로 상해 수술 받고 치료 받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여기에 원재료 값 상승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됐다. 9년 전 콩 한되(1.5kg) 가격이 6000원이었는데 그때 형성된 된장 간장 가격을 9년 후인 지금도 그대로 받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목사는 "농촌교회가 도움도 받지만 우리의 최고의 농작물을 가공해서 도시의 성도와 교회에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역선교'의 마음으로 이 일을 했다"며, "주변에서는 이거 해봤자 돈도 안남고 골병만 든다고 그만하라고 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그래도 30년 가까이 해온 것을 중단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농촌교회를 품고 기도하던 저의 첫 마음을 항상 돌아본다. 비록 여전히 미약하지만 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상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2022년 새해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저희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하시는 많은 목회자들과 코로나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는 교인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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