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즐리의 수탉이 베드로의 수탉 되다

데니즐리의 수탉이 베드로의 수탉 되다

[ 현장칼럼 ]

김용구 목사
2021년 12월 17일(금) 08:47
얼마 전 TV에서 재밌는 닭이 등장 했다. 여행자는 세계테마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터키의 파묵칼레가 속한 도시 데니즐리 지역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지방 광장의 한 곳에는 매우 유명한 닭의 동상이 있는데 이 닭은 일명 '데니즐리의 수탉'이라고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닭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지역 수탉의 특징은 거반 기절할 때까지 우는 특징이 있다. 여행자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여행자가 지역주민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집에 실제로 수탉이 있었다. 거의 1분 가량을 '꼬끼오'를 외치는 이 닭은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시간을 재보니 20여 초를 울어 1분을 운다는 소문과는 거리가 있었다.

닭이 긴장을 했다 보다. 그러나 이 또한 일반적인 닭의 울음소리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 편에 속한다. 여행자가 물었다. '이 닭은 잡아먹지 않나요?', 주인은 '(이렇게 길게 우니) 매우 비싸게 팔리는 닭이라 잡아먹지 않는다' 답했다. '길게 우는 닭은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길게 울 수 있는 닭은 생명이 연장이 된다는 말이다. 오래 울면 오래 울수록 그 닭은 생명이 연장이 되는 것이다.

어째 들어보니 왠지 닭의 목소리도 쉰 목소리 같았다. 살기 위한 몸부림 일까? 물론 닭의 울음소리는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닭의 습성상 자기과시, 구애, 해가 뜨는 것을 알리는 일조반응의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오래 우는 데니즐리의 닭은 길게 울어댐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하루하루 연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드는 생각이 한 마리 수탉조차도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해 목이 쉬도록 우는데 나는 나의 생명을 위해 간절하게 목이 쉬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드로처럼 생명 부지를 위해서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할 정도로 막가는 삶은 아닐지언정 '기도는 호흡이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기도에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면서도 그 가치를 가벼이 여기며 사는 삶에 대한 반성이 '후-욱' 올라왔다. 닭 한 마리에게 배우는 영성이라니!

성경에서 닭의 울음소리는 기막힌 타이밍에 들려진다. 누가복음(22장)의 기록에는 닭의 울음소리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로 하지 않으시고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시는 예수님을 마주한 베드로, 베드로는 이후 밖에 나가 통곡하였다. 침묵의 예수님과 통곡의 베드로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때때로 우리가 '힘주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어디선가 들린 수탉(rooster/cock)의 소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기도는 영의 호흡이다'라는 이 문장이 기독교인이 갖는 명제라면 요즘 나는 거의 인공호흡기 수준으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감,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순적히 기도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시대와 상황을 겪으며 살고 있지만 기도보다 분주한 나의 삶을 더 우선시 하고 바쁜 것이 마치 사회에서 더 인정받고 있는 양 내세우고 있는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 하게 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에게도 데니즐리의 수탉이 성경 속 베드로의 수탉으로 변모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오늘 우리도 어디선가 들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있다면 귀 기울이기를 추천한다.





김용구 목사 / 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 센터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