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장 중시하는 것, 교회는 경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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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V' (10) Vital(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1년 11월 24일(수) 10:01
연중기획 V의 이번 달 주제는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을 의미하는 'vital'이다. vital의 어원인 vita는 이탈리아어로 '삶'을 의미한다. '삶'에서 '생명과 관련된'이란 뜻이 파생됐고,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게 됐다. 더 나아가 vital은 '활기찬, 활력을 준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편집자 주>



'생명(vital)'은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단어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생명'이란 단어가 331번 이상 등장한다.

창세기 1장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생명'은 하나님이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시는 모습이다. 이후로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생명나무, 모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노아의 방주, 형들로부터 요셉의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요나단, 욥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 등 생명은 성경 속 여러 이야기들의 중심 단어로 등장한다. 신약에선'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마태복음에 처음 언급된다. 이후 요한계시록의 생명책, 생명수, 생명나무까지 성경은 생명을 가장 많이 언급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생명'은 기독교 복음과 밀접한 단어지만 최근 교회는 생명을 경시하는 곳으로 오해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초기 교회발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신뢰도는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부 교회가 폐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강행하면서 온라인 상에선 반기독교 분위기가 확산되기도 했다. 정부의 제재에 법적 대응으로 맞선 경우도 있었는데, 대면 예배의 위험성이 높지 않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예배와 생명 중 한 쪽을 택하도록 강요받기도 했다. 각종 온라인 게시판엔 '예배가 생명보다 중요하다'며 종교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교회들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국교회의 입장을 묻는 글들이 쏟아졌다.

초유의 예배 중단 상황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차에 걸쳐 내놓은 지침 안에는 생명 존중에 대한 교단의 의지가 잘 담겨 있다.

지난해 2월 발표된 2차 지침에는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제외한 그밖의 예배와 모임 자제, 공동식사 중단, 방역 당국의 지침 준수, 확진자 발생시 즉시 공지 및 모임 중단 권고가 담긴다. 다시 5일만에 나온 3차 지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는 2주 간 주일예배를 온라인 또는 가정예배로 드린다'며, 사실상 대면 예배 중단을 요청한다. 또한 정부와 방역 당국이 놓칠 수 있는 지역 사회의 취약계층, 외국인,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관심도 처음 언급된다.

3월 발표된 3차 지침은 교회가 지역 감염병 상황에 따른 시설 사용 방침을 정할 것을 촉구하며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이와함께 '치유와 회개를 위한 기도문'도 내놓는다. 총회는 '모두가 탐욕과 오만이 가득한 삶을 산 허물 많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이웃을 섬기지 못한 죄를 회개한다. 5차 지침부턴 금식기도가 실시된다. 총회는 지난해 3월 29일을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로 선포했으며, 코로나19 피해 구호를 위한 모금도 본격화했다.

'이웃의 생명'에 초점을 맞춘 2년 간의 노력은 지난달 '감염병 재난대응 매뉴얼'로 집대성 됐다. 전국교회에 배포된 90여 쪽 분량의 매뉴얼은 교인과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수록하고 있다. 위기 및 재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은 물론이고 다양한 목회 및 선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 감염병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이해를 돕는 내용도 담겼다. 매뉴얼은 한국교회가 거룩한 공교회로서 생명 목회, 생명 선교에 힘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사회는 물론 교회 깊히 침투해 있는 생명경시풍조에 경종을 울렸다면, 지난해 10월 발생한 정인이 사건은 여전히 많은 약자들이 강자의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깨닫게 했다. 특히 양부모가 기독교인인 것이 알려지며, 이 사건 역시 교회에 대한 공분을 일으켰다. 네티즌들은 폭력과 방임으로 어린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할 수 있는지 반문했다.

올해 초 SNS에선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확산됐고, 교회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장신대 이상억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앙과 정서적 건강은 다를 수 있음을 주지하며, 부모들의 객관적인 성찰과 변화를 요청했다.

'교회 내 아동 폭력 예방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확산됐다. 목회자나 중직자의 경우 상담 등의 도움을 기피하는 현상도 있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총회가 적극적으로 전문가 양성에 힘써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사실 총회는 꽤 오랜 시간 생명 준중을 강조해 왔다. 2001년 제86회 총회가 채택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생명공동체'라는 정책문서에 기초해 2002~2012년 진행한 '생명 살리기10년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이어 총회는 2012년 열린 제97회 총회에서 이 운동을 평가하고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 운동 10년(2012~2022)'을 선포했다. 당시 총대 일동의 명의로 발표된 선언문은 교단의 입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선언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다'로 시작한다.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며 생명의 주인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우리가 희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공동체'라고 선포한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하나님과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하나님과 피조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명이 충만한 샬롬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마지막 4항에서 선언문은 '생명 공동체와 치유와 화해의 공동체 구현은 하나님 나라의 도구인 교회의 과제'라며,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한다.

내년에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 운동 10년'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총회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총회는 지난 8월 지앤컴리서치를 통해 실시한 '코로나19 이후 2021년 한국교회 변화 추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교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교인은 감소했으며, 다음세대 교육도 어려워졌다.

Vital은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이라는 의미 외에도 '활기찬, 활력을 준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생명이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이다. 창조주만이 부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명이다. 한 해 동안 교회는 생명 경시로 인한 사회의 질타 속에 생명의 가치와 교회가 처한 현실을 보다 명확히 알게 됐다.

성경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며 기독교인들을 꾸짖는다. 매일의 계획과 일정이 나의 생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지구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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