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인식과 n개의 세상

n개의 인식과 n개의 세상

[ 현장칼럼 ]

김용구 목사
2021년 11월 19일(금) 08:20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무게를 계측해 본다면 어느 정도의 무게가 나올까? 저마다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측량하기란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 미션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종종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들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본업(本業)은 목사'지만 어찌하다 본업보다 더 열심히 '서브 잡'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6년이 다 되어 간다. 주로 종합병원과 급성기 재활병원에서 중도 척수손상장애인을 만나 상담을 한다. 척수손상장애는 척추 뼈 안의 신경다발이 교통사고나 낙상, 추락으로 인한 충격, 바이러스, 질병, 의료사고 등으로 척추 뼈 안의 신경이 손상을 입게 되면 손상 된 부위 아래로 마비가 되어 장애를 갖게 되며 현대의학으로는 재생이 불가능하므로 실로 '무시무시한' 장애가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았던 장애인의 삶을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려야 하는 충격은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A씨를 병원에서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상담자인 나와 그의 거리는 대기업 회의 수준으로 멀어도 그리 멀 수 없을 거리를 유지 한 채 대화를 해야 만 했다. 상담에 대해 마음이 열리지 않은 채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상담에 임했음을 그의 자세로 가늠할 수 있었다. 마음을 좁히고자 뗀 한마디에도 시종일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고, 결국에는 그 상황 자체를 답답히 여겼는지 아직 몸에도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휠체어를 밀며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이후 그의 아내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찾아 왔다. 그리고 꺼낸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왜 그가 그리 퉁명스러웠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남편은 작은 사이즈의 포크레인 기사다. 주로 도랑과 작은 규모의 농지 수로 개선 작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스름할 시간까지 혼자 작업을 하던 그는 포크레인이 도랑가로 넘어져 그 아래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포크레인에 눌려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휴대폰은 도랑에 빠져 찾을 수 없었기에 긴급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결국에 이튿날이 되어서야 그 현장에서 발견 되어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아… 그 누가 그 밤의 고통을 알 수 있으랴!' 그는 신경이 손상이 되어 밤새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도랑에 빠져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물소리는 몸을 더 무겁게 만들고, 풀벌레 소리는 공포스런 그 밤을 더 참혹한 밤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A씨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가 내게 보인 퉁명스런 그의 말투와 굳게 낀 팔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마음을 받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깊은 데서는 퉁명스럽기 그지없던 그를 내심 불편하게 여겼던 나에 대한 창피함이 몰려왔다. 내게 장애가 발생한 이후 '사람을 겉으로 보고 판단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다시 한 번 여지없이 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밤 그가 경험했던 세상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를 나의 경험으로 재단하고 있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까? 일면 '몰라서 나쁘지, 알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만큼 세상은 넓어진다. 그 인식은 우리가 알지 못하던 더 넓은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교회 안에서도 나만의 인식의 틀로 세상을 보기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서로를 환대하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그도, 나도 역사적 인물이다.





김용구 목사 / 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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